《달과 6펜스》, 세계와 이상
이 책은 기차에서 다 읽었어요. 저는 이 책을 그냥 ’달과 6펜스’라고 부르는 걸 좋아해요. 앞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혼자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더우반에서 쪽지를 보낸 이이와 몇 명은 8호 칸에 있었고 저는 6호 칸이었죠. 심심하면 놀러 가겠다고 했는데, 기차가 청두(Chengdu)에 다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안 갔어요. 기차북역에 도착하기 몇 분 전, 저는 《달과 6펜스》 마지막 몇 단락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저는 창가 쪽 아주 편안한 자리에 앉아 있었고, 정면이 기차가 나아가는 방향이었어요. 아직 밤이 되기 전이라 창밖으로 빠르게 뒤로 물러나는 풍경을 볼 수 있었고, 피곤하면 기차 창틀에 머리를 기대면 됐죠. 주변에 09학번 몇 명이 밤새 카드놀이를 하면서 몇 푼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걸, 저는 그들의 이상한 눈빛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 셋은 기차에 막 올라왔을 때 저한테 자리를 바꾸자고 했는데, 저는 뒤로 물러나는 풍경을 보는 걸 싫어해서 안 바꿨죠. 그래서 그들은 제 옆 사람과 자리를 바꿨고, 나중에 보니 제 선택이 맞았더라고요. 시창(Xichang) 역에서 청두로 일하러 가는 이족 동포 몇 명이 올라와서 그 자리에 그냥 눌러앉은 거예요. 한 친구는 어쩔 수 없이 그 이족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밤새 통로에 서 있어야 했죠. 그래서 저는 작은 구석에 숨어 이 책을 다 읽었어요. 기차에서 이런 종류의 소설을 읽는 건 좀 안 맞는 것 같아요. 《즈인》이나 《구스후이》 같은 걸 읽는 게 더 무난하겠죠.
앞의 백사십 몇 페이지는 기숙사에서 읽었어요. 스트릭랜드는 런던의 증권 중개인이에요. 지금도 증권 중개인은 괜찮은 직업이죠. 주주의 돈은 다 증권회사가 버니까요. 분명히 스트릭랜드의 당시 생활 형편도 ’우수하다’고 할 만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시골에서 혼자 런던으로 돌아온 뒤 갑자기 사라져 버렸어요.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혼자 파리로 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거예요. 아무 기초도 없이요. 소설 속 1인칭 ’나’가 파리로 가서 아내를 대신해 그를 돌아오라고 간청하지만, 이 무정한 녀석은 꿈쩍도 안 해요. 그는 지금 자신의 이상을 쫓고 있고, 여자는 그 이상을 쫓는 데 걸림돌일 뿐이니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스트릭랜드는 파리에서 한동안 떠돌며 자신을 도와준 한 가정을 깨뜨려요. 스트로브가 병든 스트릭랜드를 돌봐주는데, 나중에 스트로브의 아내 블랑슈가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되어 그를 따라가기로 결심해요. 안타깝게도 스트릭랜드는 매정한 녀석이라, 자신이 만족하자 블랑슈에게 떠나라고 해요. 그래서 블랑슈는 옥살산을 마시고 자살했죠. 그는 나중에 마르세유로 갔다가 얼마 뒤 남태평양의 한 섬에 도착해 거기서 그림에 전념하고 현지 여자와 결혼했으며, 나중에 나병으로 죽어요. 스트릭랜드는 생전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죽은 뒤 그의 그림은 1차 세계대전 전에 인정받았고 값이 아주 비싸졌어요. 반 고흐처럼요.
스트릭랜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냉혈동물이에요. 그는 누구에게도 감정을 쓰지 않아요. 여자들은 하루 종일 사랑만 생각하지만 사랑이 한 사람의 전부는 아니고, 사람은 밥도 먹어야 하고 살아야 하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여자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장애물이니 아내를 버린 거예요. 나중에 블랑슈가 그를 따라왔을 때도 그는 블랑슈를 그저 자신의 모델이자 아주 가끔 욕구를 풀어주는 도구로 여겼어요. 자신의 도구가 기대한 사용 가치를 다했다고 느꼈을 때, 블랑슈가 자신을 손아귀에 쥐지 못하게 하려고 떠나라고 했고, 블랑슈는 스트릭랜드를 확실히 붙잡으려던 목표를 이루지 못하자 자살을 택한 거예요. 모옴은 책에서 여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서술한 적이 있어요. “여자는 사랑 얘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사랑을 아주 중요하게, 우스울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은 우리를 설득해 인간의 전부가 사랑이라고 믿게 하려 한다. 사실 사랑은 인생에서 하찮은 일부분일 뿐이다. 나는 정욕만 안다. 이건 정상이고 건강한 것이다. 사랑은 일종의 병이다. 여자는 내 쾌락의 도구다. 나는 여자에게 사업의 조력자니 삶의 반려자니 하는 요구를 하는 게 몹시 싫다.” 책에는 블랑슈의 자살에 대한 서술이 하나 더 있는데, 아마 1인칭 ’나’가 초조한 스트로브를 위로하며 한 말일 거예요. 여자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선택지도 없을 때 자살로 협박하지만, 그녀가 준비한 도구는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고 남자의 마음을 돌리기만 하면 된다고요. 하지만 결국 스트로브의 아내 블랑슈는 죽었어요.
소설에는 또 다른 비극적 인물이 있어요. 바로 스트로브예요. 그는 뚱뚱한 사람이고, 말투와 행동이 늘 사람을 웃게 만들어요. 심지어 남에게 자신의 불행을 하소연할 때도 그래요. 우리가 남에게 행복을 나눌 때, 남은 당신 덕을 보지 못했어도 ‘이 사람 괜찮네’ 하고 당신을 봐줘요. 그런데 한 사람이 늘 남에게 자신의 고통을 나누면, 처음 한두 번은 듣는 사람도 동정의 눈물을 몇 방울 흘리겠지만, 횟수가 많아지면 얻는 건 동정이 아니라 비웃음이고, 앞에서든 뒤에서든 ’바보’라고 욕을 먹죠. 스트로브가 바로 그런 사람이에요. 그는 삶을 아주 사랑하고 남 돕기를 아주 좋아하지만, 늘 남에게 자신이 겪은 모든 골칫거리를 털어놓고, 게다가 자신의 생김새 자체가 웃기니 남들이 그를 얕봐요. 그가 스트릭랜드를 도와도 스트릭랜드는 그를 몹시 싫어하고 심지어 도움을 거절해요. 나중에 블랑슈가 그를 떠나자 그는 울면서 무릎 꿇고 블랑슈에게 매달리고, 매일 블랑슈가 다니는 길에서 기다리다가 뺨까지 맞아요. 전형적인 신파극 캐릭터죠. “이 사람은 머리도 없고 남편으로서의 존엄도 잃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게 매달리는 건 소용없다고 믿어요. 여자는 처음부터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로 결심하면 영원히 다시 사랑하지 않아요. “여자는 여전히 자기를 사랑하지만 자기는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누구보다 잔인하게 굴 수 있다.” 블랑슈가 죽은 뒤 스트로브는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갔어요. 저는 한 사람이 밖에서 실패하고 갈 곳이 없을 때 고향이 언제나 최고의 귀속처가 되어, 영원히 떠도는 자식의 귀환을 환영한다고 믿어요.
저는 모옴의 작품을 처음 읽었어요. 물론 저는 한 작가의 작품을 두 편 이상 읽는 일도 드물죠. 이 책만 놓고 보면, 모옴은 인물의 마음 깊은 곳을 파고드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람의 가치관은 몇 가지 층으로 나뉘는데, 가장 낮은 층은 자신의 생존을 만족시키는 것이고 가장 높은 층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에요. 스트릭랜드는 이단아예요. 그는 중간의 몇 가지, 즉 타인의 인정을 받고 존중받는 중요한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자기 배를 채우고(심지어 그는 배도 부르지 못했죠), 다른 사람의 모든 시선을 무시한 채 자신의 최고 이상을 추구해요. 한 사람이 자신의 몸조차 개의치 않을 때,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고려할까요? 저는 스트릭랜드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잘 말할 수 없어요. 어쨌든 그는 죽은 뒤 세상의 인정을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일반 대중이 만약 그처럼 한다면, 이 세상은 끝장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제 주변에 스트릭랜드처럼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독행하며 순수하게 자신을 실현하거나 인류 전체를 바꾸는 데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를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우스운 건, 그런 사람은 제 생각도 완전히 무시할 거라는 거죠. 어쨌든 그도 스트릭랜드니까요. 제 생각이 무슨 대수겠어요. 저는 나 자신에게도 물어봐요. 나의 이상은 뭐냐고. 대답을 못 하겠어요. 아마 저는 꿈만 있고 이상은 없는 것 같아요. 아니면 한 친구가 말한 것처럼, 제 이상은 제 꿈을 이루는 것인데, 이게 이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부록:
아무렇게나 적어둔 멋진 구절 몇 개:
“사랑은 한 사람의 엄청난 정력을 차지한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떠나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요구한다.”
“여자는 남자가 자기에게 가한 상처는 용서할 수 있다.” 그가 말했다. “하지만 자기에게 한 희생은 영원히 용서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재앙과 불행이 인간성을 고귀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말은 틀렸다. 고상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은 때로 오히려 행복과 성공이다. 재앙과 불행은 대부분의 경우 사람을 옹졸하게 만들고 앙갚음 심리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이것이다. 여자는 밤낮으로 사랑을 할 수 있지만, 남자는 때때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나는 아브라함이 정말로 자신을 망친 건지 몹시 의심스럽다.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환경에서 담박하고 고요하게, 세상과 다투지 않고 사는 것, 이게 정말 자신을 망치는 것일까? 반대로 유명한 외과 의사가 되어 연봉 1만 파운드를 받고 아름다운 아내를 맞는 것이 성공일까? 나는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이 삶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지, 사회에 어떤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자신에게 어떤 요구를 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