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 있었던 몇 가지 일들
버스가 고갯길을 넘어 오른쪽으로 낯선 마을이 나타났을 때, 나는 내가 다시 고향을 떠났다는 걸 문득 깨달았고, 괜히 마음이 먹먹해졌어요. 그동안 나는 정말 편안하게 지냈어요.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조용한 시골로 돌아오니, 마치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도망친 것 같았죠. 모든 고민거리를 한꺼번에 저 멀리 던져버리고, 하루 종일 QQ에 접속하지도, 웨이보를 계속 새로고침하지도, 여기저기 블로그를 돌아다니지도 않았어요. 온갖 IT 뉴스, 경제 뉴스, 이집트 정치 같은 것들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죠. 나는 그저 집에서 오리를 몇 마리 키우는지, 땅을 몇 마지기나 부치는지, 이웃들은 또 어떻게 지내는지에만 관심이 있었어요. 좋아하는 TV 프로그램도 없어서 밤 아홉 시가 조금 넘으면 침대에 누웠고, 캄캄한 방에서 혼자 큰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음악에 취해 어렴풋이 잠들었다가 다음 날 열 시에 일어났어요. 음, 하루의 절반 넘는 시간을 잠에 쓴 셈이네요. 참 사치스럽고 참 편안했어요. 자잘한 일들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것 같았고, 십여 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훅 지나가 버렸어요.
내가 돌아온 날 아침, 아빠가 노트북을 챙겨 가라고 하셨어요. 원래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무선 랜카드를 시험해 보니 망가진 것 같더라고요. 그럼 컴퓨터를 가져가도 아무 의미가 없으니, 옷 몇 벌과 책 몇 권만 대충 챙겨 왔어요. 《용의자 X의 헌신》과 《월든》이었죠. 《용의자 X의 헌신》은 《백야행》처럼 술술 읽히는 소설이라, 마당에서 노래를 들으며 읽었더니 이틀 만에 다 읽었어요. 그다음 《월든》을 읽었는데 진도가 훨씬 느렸죠. 집에 온 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계속 moumoon의 《sunshine girl》만 들었어요. 이 가수의 귀엽고 발랄한 음색이 좋아서 미친 듯이 반복 재생했는데, 어릴 때부터 들은 애국가 횟수를 넘어섰을 정도라 핸드폰을 하루에 세 번씩 충전했어요.
집에서 다시 강아지를 한 마리 키우게 됐어요. 예전에 키우던 개는 여름에 쇠사슬을 끌고 도망갔는데, 그때 날씨가 더워서 할아버지가 개가 힘들까 봐 물을 조금 끼얹었더니 그게 놀랐는지 쇠사슬을 벗어던지고 달아났대요. 처음엔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나중엔 다시는 보이지 않았어요. 새로 키우는 강아지는 나를 낯설어해서, 나만 보면 멀리서 피했어요. 하, 이 녀석 겁이 정말 많네요. 나는 멀리서부터 가까이 뼈다귀를 던져 줬어요. 그러면 꼬리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조심조심 다가와서는 뼈다귀를 물고 다시 꼬리를 끼운 채 도망가곤 했죠. 그렇게 이틀이 지나자 이 개는 더 이상 나를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나는 고양이든 개든 딱히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개를 키우는 사람은 사랑받고 싶어 하고,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은 사랑하고 싶어 한다고 하던데, 좀 일리 있는 것 같아요.
집에 C밴드 위성 TV 수신기가 있어요. 나는 이런 걸 만지작거리며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걸 좋아해요. 우리 동네에서는 78°E부터 128°E 범위의 위성을 수신할 수 있는데, 이 범위 안에서 조건부 수신이 가능한 무료 위성 채널은 죄다 한 번씩 다 봤어요. 제일 좋아하는 건 아시아샛 3호의 피닉스 위성방송과 프랑스 패션 채널이었죠. Ku밴드 고주파 헤드를 하나 더 달고 싶은데, 내가 오래 머무는 게 아니라서 계속 기회를 못 잡았어요. 내 집만 있었더라면 좋겠어요. 그러면 옥상에 큰 안테나를 몇 개 달고, 연동해서 암호화된 채널을 크랙해 볼 텐데, 하하. 우연히 청화유선방송에서 위성 수신 설비를 합법적으로 설치하고 합법적인 TV를 봐야 한다는 걸 봤는데, 합법적인 TV 프로그램이 대체 뭔지 궁금하더라고요. 피닉스가 합법인지도 모르겠고요.
할아버지는 노당원이세요. 섣달그믐날 점심을 먹을 때 할아버지가 나한테 옛날의 고생을 들려주시며 신세 한탄을 하셨는데, 누가 우리에게 행복한 삶을 가져다줬느냐는 문제에서 의견이 갈렸어요. 할아버지는 마오쩌둥이라고 하시고, 나는 덩샤오핑이라고 했죠. 나는 두어 마디 따지다가 더 이상 논쟁하지 않았어요. 사람은 나이 들수록 고집이 세지는 게 흔한 일이고, 많은 관점이 바뀌지 않으니까요. 그냥 마오쩌둥으로 해두죠. 사실 내 ‘오센트’ 친구 말대로라면 그 계란볶음밥 한 그릇에도 감사해야 하는 거지만요. 나중에 집안 역사를 들었는데, 나는 이 점을 계속 잘 몰랐고, 이웃집과 우리 조상의 관계도 잘 몰랐어요. 이제 대충은 알 것 같아요. 이런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영원히 묻지 않았을 거예요. 나는 이런 오래된 인연들에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설날 당일은 꽤 심심했어요. 할머니는 산에 올라가 불공드리는 사람들을 위해 목탁을 쳐주러 가셨어요. 나도 산에 잠깐 올라갔는데, 사촌 여동생이 갑자기 전화해서 읍내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나와 사촌 남동생은 즉시 읍내에 가기로 결정하고 읍내 절에 갔어요. 오전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지만, 바닥에 널린 쓰레기가 그때의 장면을 말해주더라고요. 나는 종교가 없고, 심지어 특정 종교 하나에는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어요. 인터넷에서 그 이름을 직접 말할 수 없는 점 양해해 주세요. 어떤 불교 사찰을 가든 나는 그저 인공적인 풍경으로 여기고, 향을 피우고 불공드리는 사람들은 임시 배우라고 생각해요. 중국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속물적인 마음이 있어요. 부처님이 그들에게 평안을 지켜주시고 재물을 얻게 해주시길 바라죠. 자비로운 부처님이 중생을 다 구제하신다면, 위대한 우리 조국에 이렇게 많은 인간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겠죠. 내가 이해하기로는, 향을 피우고 절하며 복을 비는 일은 머지않아 하나의 의식이 될 거예요. 설날에 춘련을 붙이고, 정월 대보름에 탕위안을 먹는 것처럼요.
설날 풍습이라면 세뱃돈을 받는 건데, 외할머니 쪽 이모부들은 여러 해 동안 이 습관이 없어서 나는 점점 세뱃돈 없는 설날에 익숙해졌어요. 고모 한 분은 집안 경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은데도 꼭 나한테 주시려고 하세요. 작년에는 고모가 주신 돈을 내가 몰래 고모 가방에 다시 넣어두고, 우리가 멀리 떠난 뒤에야 전화로 그 사실을 알려드렸어요. 이번에 고모 집을 떠날 때 고모는 세뱃돈을 주지 않으셨어요. 나는 이제 됐다 싶었는데, 한참 걸어가다 무심코 주머니를 만져보니 고모가 그 돈을 또 몰래 내 가방에 넣어두셨더라고요. 감동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요즘 돈 버는 것도 다 쉽지 않은데, 하물며 물가가 미친 듯이 오르는 세상이니까요. 한번은 혼자 길을 걸으며, 만약 경제가 다시 금본위제로 돌아간다면 경제 위기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봤어요. 여러 가정을 세워보니, 그걸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고모는 또 나한테 여자친구 있냐고 물으셨어요. 이번 겨울방학에 나는 비슷한 질문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엄마도 두 번이나 물어보셔서 하마터면 화를 낼 뻔했죠. 없어요, 그냥 없어요!!!!!!!!!!!!!!!!!!!!!!!!!!!!!!!! 왜 꼭 이렇게 노골적으로 물으시는 거야.
외할머니 댁에 갔어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정말 늙으셨다는 게 느껴졌어요. 볶은 요리도 예전처럼 맛있지 않았지만, 나는 그래도 맛있게 먹었어요.
초엿새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었어요. 지난 몇 번의 모임에는 모두 참석하지 않았는데, 이제 3학년이니 앞으로 다시 모일 기회가 거의 없을 테니 꼭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그 따뜻한 정이 여전히 나를 감동시켰어요. 찻집에 가서 차를 마실 때 많은 사람이 마작을 배웠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는 옆에서 역시 카드 못 하는 친구와 차를 마시며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죠. 나는 마주 앉아 조용히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야 서로를 더 많이 알 수 있으니까요. 대화할 때 상대의 반응을 볼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소통 방식이에요. 내 말이 합리적인지 가늠하기도 쉽고, 다음 대화 내용을 정리하기도 편하니까요. 인터넷 채팅에서 상대의 감정을 짐작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에요. 앞으로 우리, 차 마시러 가요. 커피도 괜찮아요.
나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어요. 이번 설은 정말 다 지나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