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은 아름답다》, All Things Bright And Beautiful
고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인 라오가오 선생님은 반려견 키우는 사람들을 가장 얕본다고 하셨어요. 현실에서 만족을 못 얻으니까 충직한 개가 꼬리 흔들며 애교 부려서 허영심을 달래준다는 거죠. 저는 그 의견에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어요. 고향에서 키우던 집 지키는 개—가장 흔한 토종개, 학명으로는 중화전원견—말고는 제 주변에 개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개를 키우는 목적을 두고 고민하는 건 저한테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어요.
요즘 저는 제임스 해리엇(James Herriot)의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를 읽고 있어요. 이 책은 로이(dearroy.com)가 올해 1월에 추천해 준 건데, 2월에 사서 이제야 5월에 완전히 다 읽었네요. 초반은 좀처럼 읽히지 않아서 두 달이나 걸려서야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어요. 인정할게요, 저 완전 느린 편이에요. 며칠 전 점심때 갑자기 정전이 돼서 너무 심심한 나머지 책갈피가 꽂힌 채 반쯤 읽은 이 책을 다시 펼쳤거든요. 어떤 감정은 오랜 시간을 거쳐서야 뜨겁게 달아오르나 봐요. 저는 이 책을 좋아하게 됐고, 해리엇이 입대하는 부분까지 쭉 읽었는데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이렇게 삶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생기겠죠.
첫 이야기 〈어린 양의 탄생〉부터 마지막에서 두 번째 이야기 〈노인과 개〉까지, 38편의 이야기는 그저 수의사 해리엇이 더를루(Darrowby) 마을 사람들의 동물을 치료해 주는 이야기예요. 돼지도 있고, 개도 있고, 고양이도 있고, 소도 있고, 새도 있고, 양도 있고, 말도 있고, 심지어 사람까지 있죠. 그런데 이런 평범하기 짝이 없는 시골 생활을 해리엇은 우리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일상을 이렇게나 익살스럽고 흥미진진하게 써낼 수 있다니, 정말 모든 생명은 아름답네요. 해리엇 같은 낙천적이고 적극적이며 유머러스한 삶의 태도를 지니지 못한 사람—예컨대 저 같은 사람—은 아마 삶의 아름다움을 영영 발견하지 못할지도 몰라요. 힐링 노래, 힐링 미녀, 힐링 쇼타, 힐링 짤이 있으니 이 책도 끼워 넣을게요. 적어도 중학교 국어 시간에 진부하게 닳아버린 그 도리를 깨닫게는 해 주니까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꽃은 잠들지 않는다》에서 “삶에 아름다움이 없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이 없는 것”이라고 했잖아요. 저는 삶이 너무 지루하다고 말해요. 매일 밥 먹고, 출근하고, 수업 듣고, 자야 하고, 매일 매일 보던 사람들을 마주하고, 똑같은 도리를 듣고, 똑같은 사이트에 접속하고, 사회에서 벌어지는 비슷한 비극을 읽고, 비슷한 감정을 보고…… 미치겠어요, 담장도 없는 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하고 싶어요. 물론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겠죠.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제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저는 제2인격으로 그들을 달래줘요. “삶이란 원래 그런 거야.” 이제는 제가 틀렸다고 말해야겠어요. 삶이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열정이 부족한 거예요. 삶은 원래 수줍은 아가씨라서 살짝만 건드려 주면 온갖 정취를 뽐낸다니까요.
《1988: 나는 이 세상과 이야기하고 싶다》를 읽을 때 루쯔예가 한 여자와 318번 국도를 함께 달렸잖아요. 미적으로 따지자면 해리엇이 샘(Sam)이라는 개를 데리고 요크셔(Yorkshire) 농장에서 차를 모는 장면이 좀 더 예쁘긴 해요. 그런데 예쁠수록 외로움의 의미도 있는 법이라, 루쯔예와 그 여자는 차를 타고 가면서 끝없는 이야기만 나눌 수 있었고, 해리엇은 진료를 다니며 운전하는 와중에 삶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거죠. 계곡, 아침 해, 물가, 모두 차를 세우고 잠깐 머물 만한 곳이에요. 바쁜 인생 잠깐의 여유랄까요. 반복되는 삶에 아름다움이 존재하니 모든 게 활기를 띠고, 책 속의 평범한 이야기 하나하나에 저는 자주 배꼽을 잡고 웃었어요.
해리엇이 동물들과 어울릴 때는 결코 일 끝냈다는 태도가 아니에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이 분명 아주 여릴 테고, 삶도 분명 아름다울 테고, 사회에도 분명 해롭지 않고 유익할 거예요. 설령 해리엇이 영국 왕립공군에 입대한다 해도, 그는 분명 사람을 죽이러 가는 건 아닐 거예요.
저도 언젠가 혼자 오프로드 차를 몰고, 셰틀랜드 쉽독을 데리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요.
정정합니다. 궈정즈위(edwardguo.com) 님이 바로잡아 주셨네요. “삶에 아름다움이 없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이 없는 것”이라는 말은 프랑스 조각가 로댕이 한 말이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원문은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한정되어 있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능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한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무한하다”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