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의 고독》, 나는 별 넷을 줬어요
《백년의 고독》을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 때였어요. 그때 국어 참고 교과서가 하나 있었는데, 사람 잡아먹는 글 천지인 《국어》 교과서보다 훨씬 좋아했거든요. 거기에 《백년의 고독》 첫 장 발췌가 실려 있었어요.
몇 년이 지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 그 《백년의 고독》 발췌를 읽던 후덥지근한 오후는 이제 기억나지 않아요. 그저 막연하게 옛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라요. “이건 위대한 소설이야.” 그런데 그분은 《백록원》, 《장 크리스토프》, 《율리시스》도 위대한 소설이라고 하셨죠. 중국 농촌을 다룬 어느 국어 수업 시간에 갑자기 물으셨어요. “《백록원》 알아? 누가 쓴 거게?” 몇 초의 정적. 저는 서점에서 봤던, 얼뜨기(얼빠진 사람)가 당나귀를 매는 풀밭에서 아가씨와 밀회를 나누는 소설이 떠올라서 대답했어요. “천중스요.” 선생님은 눈을 반짝이며 읽어봤냐고 물으셨고, 저는 고개를 저었어요. 그러자 굉장히 실망한 기색이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셨어요. “이런 위대한 소설을 안 읽으면 뭘 읽겠다는 거야!” 그러면서 모두에게 시선을 돌리셨죠.
그래서 저는 고전을 대하는 태도로 위대한 《백년의 고독》 발췌를 대했어요. “몇 년 후, 총살대 앞에서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아버지가 얼음을 보러 데려가던 그 먼 오후를 떠올릴 것이다.” 이런 문장은 제 시간관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고, 저는 이걸 고전으로 여겼어요. 최근에 알게 된 건데, 많은 중국 작가들이 이 문장을 따라 했다더군요. 그들이 떠받드는 고전도 결국 이 한 문장에만 머물렀던 것 같아요. 그들의 작품은 《백년의 고독》의 내실은 전혀 따라 하지 못했으면서요.
마침내 꼬박 세 번의 오후와 저녁을 들여 《백년의 고독》을 다 읽고 나서, 저는 그들이 말하는 그 ’충격적인 쾌감’을 느끼지 못했어요. 이건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발전을 기묘하게 반영한 소설이에요. 끊임없이 자기 탐구와 발전을 거듭하는 마을 마콘도(Macondo)가 현대 문명의 충격을 받고 결국 쇠락해 사라지는 과정을 그렸죠. 마콘도의 자기 탐구는 두 단계로 나뉘어요. 첫째는 집시 단계예요. 세계를 떠도는 집시들은 온화한 촉진자일 뿐이었어요. 그들은 마콘도에 초기 과학 산물을 가져왔지만 과학 원리는 알려주지 않았죠. 마콘도 사람들이 있던 단계는 호기심에 찬 계몽기였을 뿐이에요. 둘째는 내전 시기예요. 국가의 파벌 다툼으로 사람들은 더 폭넓은 자유와 이익을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때로는 전쟁의 목표가 불분명했어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은 평생을 싸웠으면서도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조차 몰랐고, 결국엔 그저 외로이 작은 작업장에서 금붙이 물고기를 만들며 시간을 때울 뿐이었죠. 현대 문명의 충격 시기는 바나나 농장 시기예요. 철도를 놓은 마콘도에는 돈을 벌러 온 외국인들이 잔뜩 몰려들었어요. 하지만 마콘도 사람들은 더 많은 이익을 원했고, 그래서 노동 운동이 터졌죠. 보수파와 자유파의 연합 정부는 외국인의 이익을 지키려고 집단 지능이 떨어지는 농장 노동자 삼천 명이 넘게 총살했어요. 그리고는 입을 막으려 시체를 없애고, 대외적으로는 노동 운동을 잘 해결했다고 선전했죠. 《1984》나 89년처럼 말이에요. 아무도 진실을 모르고, 어리석은 대중은 정부의 거짓말만 믿어요. 마지막으로 마콘도는 4년의 폭우와 10년의 가뭄을 겪고, 이모 아마란타 우르술라를 사랑하게 된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가 양피지를 해독한 뒤, 마을 전체가 허리케인 속에서 지워져요.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말이죠.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뭘까요? 저는 외로움과 이기심이라고 생각해요. 외로움 때문에 모두가 각자 자기 일만 해요. 우르술라는 사탕 가게를 꾸리고,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초기 세계를 탐구하고, 아이들은 남에게 맡겨져요.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는 외로워서 전쟁에 나가고, 호세 아르카디오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세상을 떠돌아요. 모두가 자기 세계에 빠져 다른 사람과 소통을 거의 하지 않죠. 나중에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는 승리가 눈앞에 왔을 때 자신의 목적을 알 수 없어 전쟁을 포기하고 보수파와 타협해요. 돈과 명예를 포함한 모든 일을 포기하고 금붙이 물고기 만드는 데만 몰두하죠. 그의 이기심은 외로움에서 비롯됐고, 결국 외부 침입자와 정부의 결탁을 불러와요. 마콘도는 새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결국 실패하고 말죠. 그렇다고 책임을 한 사람에게만 돌릴 수는 없어요. 전쟁 중에는 집단이 대령을 숭배했고, 총격이 일어나기 전 모두가 오리 떼처럼 집단 속에서 지능을 잃고 죽임을 당했어요. 광범위한 사회적 우매함도 원인 중 하나죠.
어쨌든 이야기는 아주 훌륭해요. 만약 제가 라틴아메리카 사람이라면, 분명 도우반에서 별 다섯 개를 줬을 거예요.
솔직히, 저는 별 넷을 줬어요. 정말 《백록원》을 읽어봐야 할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