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

지난번 몐양(Mianyang)에서 인턴십을 마치고, 청두(Chengdu)에서 하루 더 머물다가 다음 날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그날 오후 몐양에서 청두로 온 뒤, 반 친구들은 모두 기차북역의 덕서스에 몰려서 저녁 7시 넘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마침 저는 집 열쇠가 없어서 나도 따라 올라가 주스 한 잔 시키고 같이 수다를 떨었죠. 겸사겸사 광시(Guangxi) 출신 룸메이트한테 청두에서 놀 만한 곳을 추천해줬어요. 어쩌면 그 친구는 평생 청두에 다시 못 올지도 모르니까, 이 기회에 살짝 소개해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걔는 돌아다니기 귀찮아했고, 저도 굳이 따라다니고 싶지 않아서 고등학교 동기이자 대학 동기인 다른 친구한테 전화해서 어디 있냐고 물었어요. 한 학번 위 선배 누나 집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갈 거냐고 물어서 간다고 했죠. 이 선배 누나는 사실 제 고향 사람이기도 한데, 꽤 예쁘고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고 살짝 까무잡잡한 편이에요. 저는 습관적으로 란제라고 불러요. 1학년 때 막 왔을 때 밥을 한 번 사줬고, 그 후로도 같이 여러 번 밥을 먹었는데, 그렇게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어요. 서로 전화번호만 하나씩 알고 문자도 별로 안 했죠.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행이에요. 저는 원래 QQ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먼저 나서서 연락해서 친해지려는 편도 아니라서요. 만약 그랬다면 아마 진작에 사이가 서먹해졌겠죠. 지금처럼 끝없이 얘기할 수 있는 친근한 느낌은 없었을 거예요.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은 것 같아서 바로 갔어요. 마침 그녀와 옛날 얘기도 하고, 우리 전공의 취업 상황도 물어볼 겸해서요.

당연히 같이 저녁을 먹게 됐어요. 신훙루 근처의 한 촨촨샹 집이었는데, 사장님이 테이블을 인도 옆 화단 안으로 끌어다 놓고 우리를 앉게 했어요. 해가 지고 밤이 되자 도시의 하늘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가로등이 다 켜져서 어슴푸레한 불빛을 내뿜었죠. 몇 사람이 그 화단 안에서 술 마시고 이야기하는데, 바깥의 자동차들이 천천히 멀리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어요. 란제가 그러더라고요, 이런 느낌이 좋다고. 저는 누구든 이런 따뜻한 느낌을 싫어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우리가 미래의 날들을 미리 예습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몇 년이 됐든 십 년이 됐든, 시간이 휙 지나가고 우리가 삶에 짓눌려 숨 쉴 틈도 없을 때, 친한 친구 몇 명과 이렇게 길가 작은 가게에서 땅콩 몇 접시에 생맥주 몇 잔 시켜 놓고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것, 그게 바로 행복 아닐까요?

많은 사람이 원대한 뜻을 품고 있지만, 신은 그들 모두를 이루게 해주지 않아요. 2:8 법칙이 존재하는 한, 그들 대다수는 이번 생에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죠. 어떤 사람들은 꿈을 너무 높이 두고 너무 힘들게 쫓다가, 평생을 다 바쳐도 결국 아무것도 남지 못하기도 해요. 차라리 몸을 낮추고 꿈도 낮춰서, 곁에 있는 작은 행복들을 하나씩 쫓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반대로 생각하면, 사실 세상에 천지를 뒤흔들 만한 큰일을 진짜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뜻은 그저 뜻일 뿐이고, 인간의 타고난 게으름이 늘 행동을 막아서죠. 대다수의 삶은 인생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언제 죽을지 본인들도 전혀 모르니까요. 어쩌면 바로 다음 초일 수도 있고, 육십 년 뒤일 수도 있죠. 그러니 사람은 기적에 기대어 사는 거라고 해야 할까요. 매초 무상함의 돌봄에 감사해야 하는 거죠. 우리의 복은 결국 근심 없이 살고, 후회 없이 죽는 것, 집이 있고 밥이 있고 작은 돈을 벌고 아내를 맞이하고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것, 그렇게 평범하게 한평생 사는 것으로 충분한 거예요.

어제는 눈물을 참으면서 위화의 《살아있다》를 끝까지 읽었어요. 인생은 무상하고, 어떤 사람들이 바라는 세월이 고요하고 현실이 편안한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고, 강력한 외부의 의지와 사회적 격변 앞에서는 모든 게 희망 없어 보일 때조차,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해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머지않아 초연해질 거예요. 모든 고난은 결국 떠나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