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우리 마을 뒤에는 산이 하나 있는데, 사방에서 제일 높은 산이고 산꼭대기에는 보살묘가 하나 있어요. 한때는 법당도 웅장하고 향불도 무척 성했어서, 묘회가 열리는 날이면 사방 십 리 팔촌 사람들이 다 이곳에 와서 참배하곤 했죠. 98년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여러 번 보수를 거쳐 가끔 묘회를 여는 노인 활동 센터가 되었지만, 그래도 주변에 흩어져 있는 깨진 벽돌과 기와 조각들에서 그때의 사연을 엿볼 수 있어요.

카운트다운 열 초가 지나고 뇌관이 연달아 “쾅쾅”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해 저는 이 예쁜 절이 하늘로 튀어 오르는 돌덩이와 거대한 연기 속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걸 직접 봤어요. 그날은 이 사라질 역사를 지켜보러 온 신도가 별로 없었는데, 차마 볼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들도 올라갈 수가 없었어요. 산타나를 타고 내려온 사람들이 주변 길을 전부 막아버렸거든요. 저와 몇몇 아이들, 그리고 젊은이 몇 명은 다른 산등성이에 서서 아무 생각 없이 이 모든 걸 다 지켜봤고, 그다음엔 신나서 어두컴컴한 교실로 돌아가 수업을 계속했어요. 한참 지나서야 나는 파헤쳐진 목 없는 토지보살의 잔해에서야 겨우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는데, 어쩌면 나는 정말 그를 신으로 여겼는지도 몰라요. 우리 그 가난한 땅에 화를 내릴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해는 여전히 떠올랐고, 절이 폭파된 뒤 그 사람들은 사라졌어요. 위에서 누가 마을에 내려와 종교와 미신을 알리지도 않았고, 그저 노인들의 옥신각신이 좀 늘었을 뿐이죠. 다행히 끝내 재앙은 닥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건 마음이 정성스러워서 그런 거라면서, 토지보살을 파낸 그 지도자는 팔이 부러지고 또 다른 사람은 다리가 부러졌다고도 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직접 본 사람이 없었죠. 그들은 이곳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나는 책에서 배운 교육 덕에 무신론자가 되었고, 여러 곳의 사찰도 가봤어요. 뚱뚱하기도 하고 마르기도 한 석가모니와 관음보살도 봤지만, 향을 피우거나 돈을 보시한 적은 없어요. 내 눈에 그들은 그저 하나의 풍경이고, 어떤 사람들의 정신적 의지처일 뿐이에요. 아니, 신이란 게 바로 정신적 의지처인 거죠. 모든 사람에게 자기만의 이상과 추구, 처세의 법칙이 있다면,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믿음이 있는 거예요.

내가 자란 마을은 지난 수많은 막막한 세월 동안, 모두가 조상 대대로 이곳에 살면서 한 세대 또 한 세대가 이곳에서 밭을 갈고 농사를 지었어요. 문서로 기록된 역사도 없고,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동경도 없이, 그저 사는 것 자체가 삶의 전부였죠. 자기가 아프지 않기를, 가족이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어요. 그런데 누가 그들에게 그것을 약속해 줄 수 있었을까요? 그때 높은 세금 때문에 사람들을 농약 자살로 내몰던 정부였을까요, 아니면 종적을 감춘 자선 단체였을까요? 참으로 난처한 농담이죠. 굶주린 사람은 초월적인 인격 신앙을 세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생각하지 않고도 쓸 수 있는 종교가 그들에게는 최선의 선택이 되었죠. 신이 그들의 배부름만 보장해 준다면, 불교든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우리 그 절이 생겨난 게 마을 사람들의 삶이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긴 하지만, 종교의 의미는 가난을 벗어나 부자가 되는 데 있지 않아요. 더 나아가 말하면, 종교는 애초에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게 아니에요. 나는 《능엄경》을 조금 읽어봤는데, 종교의 목적 역시 신도들의 인격 신앙을 키우고, 어려움을 견디는 법을 가르치며, 낙관적이고 활달한 삶의 태도를 추구하고, 선을 베풀어 남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무신론자들이 탐구하는 정신적 경지와 꽤 비슷하더군요.

가장 두려운 건 어떤 사람들이 올바른 종교 신앙도 없고, 적절한 인격 신앙도 없는 경우예요. 어떤 노인들은 불교를 믿으면서 온 집안의 돈을 절에 보시하고, 무수한 향유등을 사서 태워버려요. 그 돈이 자녀들의 고된 노동에서 나온 것이고 자기 밥값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잊은 것 같아요. 이런 믿음의 목적은 무척 이기적이어서 불교가 추구하는 게 아니에요. 현지 불법의 보급이 참 실패했다고 할 수 있죠.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도 믿지 않고, 삶 속에서 올바른 인격적 추구도 배우지 못했어요. 그들의 인생 목적은 전부 부유함을 추구하는 것이고, 남의 건강과 이익을 해치면서 자기 기호를 만족시키죠. 가짜 약, 가짜 분유를 만들고, 품질이 불합격인 제품을 시장에 유통시키면서도,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는 가르치지 못했어요. 주걸륜은 《그 시절 우리가 함께 쫓던 소녀》에서 자기들이 국민학교 시절 산에 가서 불법을 배웠다고 언급했는데, 이런 교육 방식이 정말 부러워요. 그들이 교실에서 인격 함양을 배울 수 있든 없든, 적어도 종교를 선택할 기회가 하나 더 있었으니까요.

11월 25일, 산시성 타이위안 기차역 대합실에서 한 노인이 갑자기 사망했어요. 구경꾼들이 크게 둘러싼 원 안에서 한 스님이 손을 잡고 이 노인을 천도해 주었는데, 비록 천도가 무신론자의 눈에는 의미가 없겠지만, 나는 거기서 생명에 대한 존중과 죽음에 대한 직시를 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