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연말 결산
한 해가 갈수록 점점 빨라져서, 어렴풋이 어제만 해도 1호관 옥상에서 거대한 1호 도면을 펼쳐놓고 전동장치를 그리고 있었는데, 내일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마주해야 할 2012년이에요. 관례대로라면 연말 결산을 쓸 시간이죠……
올 한 해는 대체로 나쁘지도 좋지도 않게 지나갔어요. 작년에 겪었던 일들에 비하면 꽤나 밋밋했죠. 운동은 거의 안 했고, 배운 지식도 없고, 인생의 반쪽도 못 찾았고, 삶의 파동은 제로였어요. 그러다 보니 인생의 몇십 분의 일이 이렇게 담담하게 사라져 버렸네요. 어느 각도에서 봐도 슬픈 일이에요.
11년에 QQ 상태메시지를 몇 개 올렸는지 세어봤더니 딱 40개였어요. 아마 10년의 3분의 1 정도겠죠. 이 상태메시지들이 내가 삶에 바라는 것과 기대는 걸 보여준다면, 분명히 올해 내 기분은 꽤 다운이었어요. 마지막 날에 뭐라도 하나 써볼까 해서 별별 생각을 다 짜내다가 겨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 줄 적고 전송을 눌렀는데, 웬걸 내 방명록에 써진 거예요. 그래서 혼자 자조하고 마우스 두 번 클릭해서 지워버렸죠. 시간과 거리는 사랑만의 킬러가 아닌가 봐요. 때로는 우정도, 가족 간의 정도 그 칼끝에서 함께 사라져 버리니까요. 그럼 그냥 이쯤에서 접어둘게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올해 웨이보에서는, 보다시피 저 엄청 활발했어요. 그런데 가장 활발한 상태가 오히려 억누를 수 없는 거대한 외로움을 반영하죠. 글로 표현하면 신념의 힘이 더 강해지니까요. 저는 그냥 뭐라도 말하고 싶었어요, 그 영향이 아무리 미미하더라도요. 웨이보는 매일 네티즌들에게 끝없는 실시간 정보를 제공하죠. 어떤 사람은 지루해하고 어떤 사람은 재밌어해요. 저는 마음이 어떤 모양이냐에 따라 하늘이 어떤 모양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를 팔로우하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거죠, 보시는 것처럼요.
올해 1, 2월쯤에 고향에 돌아가서 동창 모임 두 번에 참석했어요. 중학교 동창들은 순수하고 다정해서 6년 만에 만난 것 같지가 않았어요. 고등학교 동창들은 각자 자기들만의 모임이 있고 각자 자기 생각이 있더라고요. 이런 차이가 생긴 건 아마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들은 대부분 일찍 사회에 나가서 타향에서 떠돌다 보니 고향 친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어서, 만날 때 더 열정적인 게 아닐까 싶어요.
연휴가 거의 끝나갈 무렵, 어느 날 오후에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친구들이 아버지를 병원에 데려다 드리고 나서야 어머니께 전화해서 의식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이 갑작스러운 소식에 우리는 깜짝 놀랐어요!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갑자기 견디기 힘든 무게가 느껴졌어요. 한동안 꽉 막힌 차량 행렬에 갇혀서 시간이 견디기 힘들 만큼 길게 느껴졌죠. 가는 내내 수많은 가정을 세우고, 삶의 어떤 가능성에도 맞설 준비를 했어요. 그날 저는 아무 기도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삶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냉정하게 마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죠. 도착하기 전에 길을 잘못 들어서 몇 블록이나 지나서야 제대로 된 병원을 찾았어요. 응급실로 달려 들어갔더니 아버지는 이미 깨어 계셨고, 눈가에는 진통을 견딘 뒤의 눈물이 맺혀 있었어요. 그다음엔 일련의 병원 절차를 제가 대신 서명했어요. 다행히 아버지는 아무 이상이 없으셨고, 저는 대충 짐작했어요. 식습관 때문에 생긴 병이라는 걸요. 그래서 여름방학에 토끼 고기를 많이 먹었어요. 아버지가 토끼 고기는 지방 함량이 3%밖에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그다음 4, 5월쯤에 샤오신을 알게 됐어요. 우리 그룹의 활력소 같은 친구인데, 바로 메기 효과에서 그 메기예요. 그 친구가 휘젓고 다닌 덕분에 지금은 샤오뤄, 민민, 그리고 같은 학과의 어떤 친구까지 알게 되어서 다 같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만나 밥을 먹게 됐어요. 그런데 말하자면, 온라인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람은 같은 학과의 여자 친구였어요. 원래 우리 학과는 몇 명 안 되는 데다가, 그 친구가 인터넷에 정보를 조금 공개했길래 소거법으로 금방 확인했죠. 불행히도 몇 분 뒤에 그 친구도 내 정체를 확인해 버려서, 우리는 그렇게 알게 됐어요.
학업은 별로 할 말이 없어요. 어차피 대학은 그런 거죠. 잘하면 패스, 못하면 재수강. 연애할 사람은 연애하고, 게임할 사람은 게임하고, 딴짓할 사람은 딴짓하고. 각자 할 일 하고, 각자 집에 가고, 각자 엄마 찾아가고. 여름방학에 집에서 한 달을 박혀서 소설을 한 무더기 사서 읽었는데,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어요. 어머니가 아르바이트를 구하라고 성화셨는데, 저는 아버지 따라 일하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됐죠. 8월 가장 더울 때 충칭(Chongqing)에 며칠 놀러 가서 ZH 동창을 만났어요. 블로거 친구를 처음 만났는데 같이 사진 찍는 걸 깜빡해서 좀 아쉬웠어요. 충칭에서 돌아온 지 사흘째 되던 날 몐양(Mianyang)에 갔어요. 몐양의 유명한 홍등가에서 열흘 넘게 지냈는데, 거기서 실족한 여성들, 경찰, 그리고 다른 시민들이 사이좋게 어울리는 걸 봤어요. 창훙 공장에서 몇몇 직원들과 접촉해 보니 이 기업은 효율이 낮더라고요. 그쪽 직도센터의 한 책임자 말을 빌리자면, 예전엔 BMW가 들어가면 오토바이가 나왔는데, 플라즈마 스크린을 투자한 후로는 이제 아코드가 나온다고 해요. 이번 반년 동안 그쪽 주식을 보면서, 그 말이 정말 맞다고 느꼈어요.
학교로 돌아온 뒤 10월 중순에 자전거를 타러 갔는데, 이 여행 방식에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나중에 같은 라이딩 취미를 가진 고등학교 동창의 공간에서 아주 마음에 드는 글귀를 발견했어요. 그 친구가 말하길, “여자로서도 검을 들고 천하를 누비는 호연지기를 가져야 한다”고요. 남자인 저야말로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요?
국경절에는 집에 돌아가서 충하이(Qionghai)에 갔고, 광한(Guanghan) 비행학교 공사 현장에도 갔어요. 학교로 돌아온 뒤 캠퍼스 채용에 참가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고, 오히려 취업관이 많이 바뀌어서 일하고 싶지 않아졌어요.
11월 말에는 운전학원에 등록해서 매일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을 시작했어요. 시간 문제 때문에 아직 시험은 못 봤어요.
(12년 새해 첫날에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