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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에 막 집에 돌아왔더니, 할머니가 아래쪽 집안 사람들이 올해는 조용한 명절을 보낼 수 있을지 어쩔지 짐작해 보시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그 집 영감님이 상태가 아주 안 좋아서 거의 돌아가실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야 옆집 두 노인도 이미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어요. 한 분은 작년 초이렛날에 가셨다는데, 저는 전혀 몰랐어요. 몇 년 동안 집에 올 때마다 늘 노인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외지에 있으면 알 수가 없어요. 그분들의 삶이란 게 워낙 작아서, 한 마을 사람들조차 눈여겨보지 않을 정도니까요.
섣달그믐날, 아래쪽 집 아이가 우리 집 뒤뜰에 와서 벽돌을 나르길래 이상하다 싶어 물어봤더니, 할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향년 아흔이라고요. 우리 동네 말로는 그분이 “늙었다”고 해야 하는데, 누가 늙었다고만 해도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들어요. 늙음이 다가오고 죽음이 가까워지면, 모두들 다른 노인들이 언제든 돌아가실 수 있다는 걸 은근히 마음의 준비를 해 두고 있어요. 다만 그 오래전부터 품어온 생각을 아무도 입 밖에 내려 하지 않을 뿐이죠. 누군가 돌아가셨을 때 “늙었다”는 말만 들으면, 사람들은 가볍게 “오~” 하고 말 뿐이에요.
명절이라서인지 처음엔 그 집에서 아무것도 차리지 않았어요. 어느 날 그 집 마당에 가 봤더니, 온 집안 자식들이 향 피우고 초 켜 놓은 빈소 앞에서 낄낄대며 카드놀이를 하고 있더라고요. 죽음의 기운이라고는 전혀 없었어요. 슬픔과 울음은 불행을 당했을 때 치르는 의식이고, 스스로 살아나고 스스로 사라지는 삶을 웃으며 마주하는 것만이 위안이 되는 법이니까요. 그런데 관습상 노인이 돌아가시면 반드시 곡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그 집 자식들이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다는 거죠. 상업화된 사회에서 모든 관계가 돈으로 환산되면서, 요즘은 풍물패에 곡하는 사람이 딸려 있어요. 하늘을 찌르듯 울부짖고 죽을 듯 괴로워하는데, 김정일이 죽었을 때 북한 사람들만큼 슬프게 우는 걸 보장한다고 해요. 초엿샛날, 초이렛날쯤이면 장례를 준비하는데, 외지에서 요리사를 불러 상을 차리고 온 마을 사람들과 친척, 친구들을 두 번이나 불러 술을 따르고 차를 따르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했어요. 노인의 네 아들이 건네는 그 덕담이 좀 웃기기도 하고,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잔을 비웠어요.
다음 날 새벽에 장례를 치렀는데, 폭죽을 그 집 대문에서 묘지까지 터뜨렸어요. 저는 보러 가지 않았어요. 어차피 또 한 사람이 줄고, 무덤이 하나 새로 생긴 것뿐이니까요. 나중에 들으니 돌을 들어 무덤을 쌓다가 한 사람이 다쳤다더라고요. 산 너머에 사는, 나이가 좀 있는 분인데 돈이 궁하다는 소문이 있어서 160위안을 받고 관을 메러 왔다가 돌에 눌려 손가락 한 마디가 부러졌대요. 배상금을 따진다면, 아마 얼마 못 받을 것 같아요.
네 아들은 이레 동안 향을 피운 뒤 또 떠나버렸고, 텅 빈 집만 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