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키우던 어린 시절
내가 《한 마을 속의 중국》을 산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슝페이윈이 쓴 책이라서, 둘째는 중국 농촌을 다룬 책이라서예요. 도시 사람 중에 이런 소재에 관심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믿어요. 내가 이 책을 읽는 건 대부분 내 고귀한 농촌 혈통 덕분이죠. 네, 이 정체성은 참 고귀해요. 나는 혼자 파릇파릇한 논에 서서 고개를 갸웃하고 팔성팔찬 휴대폰에서 우렁차게 흘러나오는 농업 헤비메탈을 듣고 싶은 심정이에요. 이 얼마나 속으로 꿈틀대는 자부심인지, 나에겐 내 땅이 있고, 온 산야를 누비며 소를 먹이던 어린 시절이 있으니까요.
시간이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나는 소를 먹이던 일을 딱 한 번만 기억해요. 우리 고향 지역은 구릉 지대라서 농사 대부분이 축력을 써야 했고, 그래서 소는 농촌에서 아주 높은 지위를 차지했어요. 인도처럼 신으로 모시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돼지나 개와 같은 급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죠. 가격을 비교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소가 너무 비싸서 시골의 소는 대개 몇 집이 공동으로 사서 돌아가며 키웠고, 약속한 날이 되면 남의 외양간에 가서 소를 끌고 자기 집 외양간으로 데려와 관리해야 했어요. 제때 풀을 먹이고 물을 먹이고, 물론 매일 산책할 기회도 주고요. 예로부터 소 먹이는 아이들의 전담이었죠. 시에는 안개비에 살구꽃, 목동의 짧은 피리 같은 게 나오지만, 현대의 서남 농촌에 와서는 안개비에 살구꽃은커녕 피리 부는 사람조차 없어요. 90년대 어른들은 공점수를 벌어 정부의 높은 농업세와 부과금을 상환하느라 바빠서, 배도 못 채우는 그런 장난감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틈이 어디 있었겠어요. 우리 산골 초등학교 선생님 두 분도 못 불었어요. 그분들은 국어랑 수학만 가르쳤거든요.
어느 날 방과 후, 하여튼 오후 내내 수학을 배웠든 국어를 배웠든,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가 맞은편 산꼭대기에 가서 소를 먹이라고 하셨어요. 소를 배불리 먹여야만 돌아올 수 있다는 규정이었죠. 그래서 나는 몇몇 아이들과 함께 소를 산꼭대기로 끌고 갔어요. 그런데 웬일인지 그 아이들은 아주 일찍 소를 끌고 집에 가려는 거예요. 젠장, 겨우 끌고 올라왔는데 벌써 끌고 내려가다니. 나는 아직 소를 배불리 먹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보고를 하죠? 어쩔 수 없이 혼자 외롭게 산꼭대기에서 소를 먹였어요. 나는 손목시계가 없어서 시간이 나를 골탕 먹였죠. 어둠이 서쪽에서 사방으로 덮쳐 왔고, 상황을 보아하니 소가 슬슬 배부른 것 같아서 나는 소를 끌고 동쪽으로 산을 내려 집으로 향했어요. 해가 서쪽으로 지니 산의 동쪽은 꼭대기처럼 밝지 않았고, 내려갈수록 더 어두워졌어요. 가는 길에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져서 오싹함이 더해졌죠. 나는 걸음을 재촉하며 빨리 집에 가서 이 흐릿한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때 소가 나를 골탕 먹이기 시작했어요. 소가 성질을 부려 소기충천해서 제자리에 서서 안 가는 거예요. 나는 몹시 초조했어요. 하늘이 거의 완전히 어두워지는데 혼자라 무서워서 있는 힘껏 소를 당겼지만, 그때 나는 소만큼 키도 안 컸기에 힘을 다해도 오히려 소가 나를 뒤로 끌고 갔어요. 나는 몸부림을 포기하고 더는 당기지 않은 채 고삐를 붙잡고 산 중턱에서 절망적으로 할머니에게 산에 올라와 도와달라고 소리쳤어요. 한참을 외쳐도 아무도 대답이 없었어요. 아마 그들도 아직 집에 안 돌아왔거나, 다른 산등성이 저편에 있어서 내 외침을 전혀 들을 수 없었던 거죠. 하지만 어둠이 왔고, 나는 그 절망과 무력감, 그리고 어둠을 마주한 공포를 극복할 수 없었어요. 귀신에게 잡아먹힐까 봐 무서워서, 오직 크게 외쳐야만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어요. 나는 한 번 한 번 외칠수록 점점 더 두려워졌고, 점점 더 심하게 울었어요.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간은 분명 아주 길게 느껴졌죠. 한참이 지나서야 할머니가 내 외침을 듣고 아주 먼 곳에서 응답하셨고, 그제야 나는 방향을 찾은 기분이었어요.
어린 시절의 이 일은 내 기억에 너무 깊이 남아 있어서 도저히 잊을 수가 없어요. 나중에 생각해 보니, 당시 가장 두려웠던 건 내 울음소리였던 것 같아요. 처절하게 울수록 더 공포를 느꼈으니까요. 만약 그때 울지 않았다면, 아마 상황이 그때처럼 최악은 아니었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