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 조금만 천천히요
버스 기사님이 액셀을 좀 더 밟자, 세상이 순식간에 밉살스러워졌어요.
저는 느릿느릿한 차에 앉아 창밖의 사람들과 풍경이 천천히 물러나는 걸 보고 싶었을 뿐인데요.
이상적인 삶이란 이런 거겠죠. 정신없이 몰아치는 건 싫어요.
그런데 운전하는 사람이 저 자신이 아니네요.
회사 막내는 돈을 자주 안 챙겨서 점심을 못 먹어요.
밥 먹고 나서 제가 어쩔 수 없이 돈을 내줘요.
그 애가 그러더라고요, 정말 미안하다고, 매번 오빠가 사는 거 같다고.
하하.
속으로는 부르짖었죠.
아 진짜!!!
처음엔 내가 한 끼 사면 너도 한 끼는 사겠지 싶었는데, 결국 매 끼니 다 내가 사게 됐어요.
사실 저도 돈이 빠듯한데, 쿨한 척해야 하니까 쓴웃음만 나와요.
— 눈앞에서 누가 배고파하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순 없잖아요.
분명 여름이 온 거예요.
마음이 좀 들떠요.
눈이 자꾸 저도 모르게 이리저리 훑어요.
무심코 뭔가를 봐버렸어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누님, 그 초미니 스커트 입고 그렇게 남자답게 앉으시면…
가끔은 참 한심하기도 하죠.
안 보이는 걸 알면서도 자꾸 보게 돼요.
설마 내 눈알을 파내시겠어요.
저는 말했어요, 벌써 지루해졌다고, 17인치로 디자인하는 건 이 업계에 대한 모욕이라고.
못 참겠어요, 이직하고 싶어요.
뭘로?
27인치 컴퓨터 앞에서 일하고 싶어요.
풉~~ 그건 그냥 바람일 뿐, 현실로 이어지진 않네요.
제가 디자인한 걸 누군가 즐겁게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
약간의 성취감이 들어요.
문득 깨달았어요. 디자인의 목적은 고객이 디자인을 잊게 만드는 거구나.
하는 일엔 각이 없는데,
말재주만 점점 늘어요.
여느 때처럼, 벽돌 한 장이 날아갔죠.
아마 도시가 너무 깨끗해서, 흙조차 볼 수 없나 봐요.
그리고 휴대폰 비행기 모드는 딱 한 번만 쓸 수 있더라고요.
고1 때, 제 뒤에 앉은 여자애가 제 등에 글씨 쓰는 걸 좋아했어요.
뭐라고 썼는지 맞혀볼래요?
몰라.
하나 더 쓸게, 또 맞혀봐. 네 등에 살집이 있어서 쓰는 맛이 있네.
사실 저도 즐기고 있었어요. 마사지 같아서, 어차피 수업도 지루했으니까요.
그러다 반이 갈렸고, 오륙 년 동안 말 한마디 안 했어요.
지지난주에, 제 친구가 저한테 웹 디자인을 할 줄 안다고, 제 QQ를 그 애한테 줬어요.
띠링띠링……
너야! 나 아직 기억하냐고?
당연히 알죠, 내 등에 글씨 쓰던 여자애잖아요.
“하하… 나 잊어버렸어.”
……
십만 개의 왜가 저한테 질문 하나를 던지면,
저는 구글에 질문 하나를 던져요.
그러다 보니 백과사전이 됐네요.
누구나 알죠, 우리 삶이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하지만, 저는 한 번도 그 방향으로 노력해본 적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