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빗소리 속에서

내가 사는 집은 제3중학교 안에 있어요. 정확히 말하면 친구가 빌린 집인데, 나는 일이 바빠서 집을 찾을 시간이 없어서 그 집이 대체 어떤 곳인지도 모른 채 그냥 같이 살게 됐어요. 오기 전에는 나름 환상을 품고 있었거든요. 통유리창, 좋은 채광, 넓은 베란다 같은 것들. 그런데 이사 온 날에야 꿈에서 깨듯이 알게 됐죠, 삶이란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꽃 화분이 가득한 베란다에서 느긋하게 차 한 잔 우리고 조용히 책 한 권 읽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우선 방 전체에 베란다가 없고, 꽃도 충분치 않고, 편한 의자고 뭐고 없어요. 내 침실이라고 해봐야 컴퓨터 책상 하나가 전부예요. 내가 꿈꾸던 집이라면 폭 140센티미터, 깊이 80, 높이 72센티미터쯤 되는 물푸레나무 책상이 있어야 하고, 그 위에 노트북 한 대, 옆에 아무렇게나 책 몇 권과 2년째 키우는 화분 하나가 놓여 있어야 하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그럴듯하게 책 두 권을 펼쳐 들고 있어야 하는 건데…… 이상적인 모습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요. 누구한테 ’삶이 이렇게 초라하면 안 된다’고 강하게 항의할 수는 없죠. 애초에 선택할 수 있었는데 기회를 포기한 거니까. 그래도 불만이 있다면 그건 분명 머리에 구멍이 난 거겠죠.

우리 아래층에는 노부부가 살아요. 전업으로 폐품을 수집하는 것 같은데, 자주 아래층 벽 모퉁이에 폐품 몇 포대를 수북이 쌓아두고, 소나기가 오려치면 늘 그 폐품들 위에 방수포를 덮어주곤 해요. 가끔 내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그분들 문이 열려 있는데, 방 안에는 온갖 물건이 어지럽게 놓여 있고, 작은 상자 위에 올려진 21인치 TV에서는 시시때때로 뉴스 프로그램이 흘러나와요. TV 소리는 많은 가정에서 배경음처럼 존재하죠. 마치 운동회에 라데츠키 행진곡이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아무리 중대한 국가 시사 뉴스라도 실용주의 중국인인 우리에겐 마음껏 무시해도 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노인들에게 뉴스 프로그램은 가정 배경음악 역할 외에도, 어쩌면 이곳이 진짜 세상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역할도 하는지 몰라요.

며칠 전 등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마침 아래층 할아버지가 고물을 정리하고 계신 걸 만났어요. 우리 위층에 플라스틱병이 수십 개쯤 있는데 필요하시냐고, 다 드리겠다고 했죠. 드린 이유가 연민 때문은 아니에요. 얼마 전에 아래층에서 누가 “고물 삽니다~”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나는 창문에 엎드려서 플라스틱병 수십 개 살 거냐고 물었더니, 아주 단호하게 “안 사요!” 하시더라고요. 자존심이 좀 상했어요. 경제성을 따지는 요즘, 고물 수집하는 동지조차 예전처럼 열심이지가 않네요. 역시 시대가 발전하고 있고, 모든 업종에서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자칫하면 경제 관념이 뒤처지니 정말 감동적이네요. 그 병들을 처리하지 못해서 제일 먼저 떠오른 게 아래층 부부에게 드리는 거였어요. 내가 원치 않는 것은 남에게 베푸는 게 즐거우니까요. 할아버지는 내가 병을 드린다고 하니 바로 삼베 자루 하나를 꺼내 들고 3층까지 따라 올라오셨어요. 병을 하나씩 자루에 마구 밀어 넣으시는데, 어떤 병에는 마시다 남은 생수도 들어 있었어요. 재빨리 뚜껑을 열더니, 내가 화장실에 물을 버리라고 말하기도 전에 이미 손을 문 밖으로 내밀어 계단 사이로 꿀꺽꿀꺽 물을 쏟아버리셨어요. 뭐라고 하기도 그랬는데, 또 큰 병 하나를 복도에 쏟더라고요. 물이 증발하면 그만이니까요. 다행히 새콤달콤한 과일 음료는 아니었어요. 어쩌면 물이 증발한다는 건 생각했겠지만, 누군가 이 물웅덩이 때문에 미끄러지거나, 신발 밑창이 더러워져 바닥을 흠뻑 적시게 될 거라는 건 생각 못 한 거죠. 보아하니 꽤나 독기가 있는 할아버지예요. 우리 집이 07년에 겨우 12만 위안이었다는데 너무 비싸다고 안 샀대요. 우리 집주인이 샀는데 지금은 무려 30만 위안이 넘는다면서 아쉬워하시더라고요. 비슷한 이야기를 한두 번 들은 게 아니에요. 집값 맞히기는 정부와의 도박이나 다름없어요. 누가 자기만 늘 이긴다고 장담할 수 있겠어요. 지금 손에 30만 위안이 넘게 있다면, 감히 판돈을 걸겠어요? 정말 그 할아버지한테 “그만 좀 불평하시고 편히 고물이나 모으세요! 남의 복도에 물 쏟지 마시고요”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결국엔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나중에 또 생기면 드릴게요!“라고만 했어요.

우리 위층에는 물건을 파는 할머니가 살아요. 가끔 우리는 그분 집에서 맥주를 사요. 별로 접촉은 없었는데, 며칠 전 우리가 전기를 다 써버렸을 때 지나가시다가 전기 사는 비법을 알려주셨어요. 전기 카드에 반드시 몇백 위안씩 전기 요금을 남겨둬서 불시에 대비하라는 거였죠. 이게 바로 그분의 생활 예술인가 봐요. 아마 자녀가 적어도 둘은 있을 거예요.

전기가 없다는 얘기가 나왔으니, 확실히 골치 아픈 일이에요. 우리는 전기 사는 책임을 전적으로 웨이거에게 위임했는데, 웨이거는 다른 시간대에 살아서 우리 사이엔 시차가 있어요. 매일 아침 내가 일어나 세수할 때쯤이면 웨이거는 거의 잠자리에 들고, 내가 저녁에 퇴근할 때면 웨이거가 일어나죠. 그런데 전기를 파는 부서는 베이징 시간을 쓰니까, 우리 냉장고는 거의 일주일째 가동을 안 했어요.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바닥에 흥건하고, 바닥의 물은 수증기가 되어 방 전체에 퍼졌죠……

젊은이들이 “심심하다”고 말할 때는 당연히 인터넷을 하다 눈이 시리고, 휴대폰 데이터를 다 써버리고, 후난위성TV에서 광고가 나올 때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기가 없던 이 기간에 나는 아주 “심심했지만”, 실은 꽤 충실하게 지냈어요. 밤이 내리고 집 안이 캄캄할 때, 나는 침대에 누워 무료하게 있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환한 곳이 떠올랐어요. 그것도 24시간 빛이 충분한 곳이요. 잠깐 망설이다가 얼마 전 산 《강성》을 집어 들고 그곳으로 갔어요. 가는 길에 휴대폰으로 쥐안이랑 두어 마디 나눠서 위로를 좀 받았죠. KFC에서 쫓겨나지 않게 해달라고요. 역시 쫓겨나지 않았어요. 설마 내가 9위안짜리, 실제 원가는 1위안도 안 되는 홍차를 샀기 때문일까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갑자기 떳떳해지더라고요. 네 집에서 앉아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면 누가 9위안이나 내고 여기 와서 물 한 잔 사겠어요. 나중에 쥐안이한테 말했어요. “사실 나는 지금 이 시간이 꽤 좋아. 일만 빼면 다 자유롭거든.” 문득 한 책 제목이 떠올랐어요. 《한 사람의 좋은 날씨》. 나는 친구 하나 없는 도시에서 계속 살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지금 이런 기회가 있으니 일은 차치하고 나머지 시간은 완전히 내 뜻대로 살 수 있어요. 부모님이 있는 도시에서 “이건 안 돼, 저건 안 돼”라는 잔소리를 듣거나, 친척 친구들의 “여기 좀 도와줘, 저기서 밥 한 끼 먹자”라는 번거로움을 겪는 것보다 만 배는 낫죠. 그런데 아무리 혼자 사는 걸 좋아하고, 아무리 혼자가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보여줘도, 도시 전체가 새벽 두 시의 빗소리에 잠길 때면, 나는 알아요. 나는 그들을 떠날 수 없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