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연말 결산
거의 일주일이나 늦어버린 연말 결산이에요. 요 며칠 마음을 다잡고 지난 한 해를 차분히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게으름이 끝내 이겼네요. 이제라도 안 쓰면 영영 안 쓸 것 같아서 그제야 공손하게 펜을 들었어요.
2012년 말, 그렇게 기대했던 세계멸망은 끝내 오지 않았고, 낙관론자든 비관론자든 새해를 맞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죠. 얼마 전에 저는 스물셋 생일을 막 지났어요. 2012년이라는 페이지가 넘어가는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우리는 하루하루 성장하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는 거구나 하고요. 깜빡한 사이에 한 살을 더 먹었고, 조금만 방심한 사이에 삼백여 일의 낮과 밤이 소리도 없이 흘러가버렸어요.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건, 이 한 해를 돌아봐도 별다른 인연도, 평생 잊지 못할 일도, 다채로운 순간도 없었다는 거예요. 어쨌든 이 한 해도 역시 밋밋한 한 해였죠. 그래도 삶이 삶인 이유는, 날들이 출렁이든 죽은 듯 고요하든 우리는 결국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기 때문이겠죠.
작년 11월에야 청두(Chengdu)로 돌아와서 일자리를 구해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어요. 어제 지하철을 탔는데, 오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자니 그들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히지 않더라고요. 아마 제 얼굴도 비슷하겠죠. 이쪽으로 돌아온 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여기서 꽤 오래 살아온 것 같고, 앞으로도 이 표정 그대로 한참을 더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참 지루한 나날이에요. 그들이 안쓰럽고, 저 자신도 가엾어요. 예전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본 적도 있는데, 개인의 의지가 인류 전체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개인의 삶이 우주의 긴 역사 속에서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떠올리면, 아무리 큰 권력과 많은 돈과 분출할 수 있는 욕망이 있다 한들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텐데, 그렇게 필사적으로 사는 이유가 뭘까 싶어지더라고요. 개미 같은 몸뚱이라도 세상에 겨우겨우 살아가는 거라면, 사람이 사는 목적도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거겠죠. 배부르려면 일해야 하고, 자신감을 얻으려면 베풀어야 하고, 소통하려면 감정이 필요하고…… 결국 삶이란 하나의 본능인 거예요.
4월부터 11월까지는 그다지 순탄치 않았어요. 먹고살기 위해 광고 회사에 다녔는데, 예전엔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막상 자리에 앉아보니 그게 아니게 된 광고 디자인 일이었죠. 그 시기가 오랫동안 품어온 ’단순함이 곧 아름다움’이라는 제 디자인 이상을 완전히 박살 내버렸어요. 덕분에 디자인이란 게 생각처럼 자유롭고 영감으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더 절실히 깨달았죠. 사실 그것들도 다 필수가 아니고, 갑은 결국 고객이에요. 그러다 한동안은 서비스 마인드에도 대충대충하는 태도가 생겼어요. 고객에게 선택의 자유를 너무 많이 주면 줄수록 ’선택 장애’에 걸리기 쉬우니까, 때로는 깔끔하게 시안을 던져주는 편이 오히려 그들이 편해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국경절 연휴에는 샹그릴라(Shangri-La)와 메이리쉐산(Meili Snow Mountain)에 다녀왔어요. 갈 때는 순례를 위해서였는데, 돌아올 때는 참 많은 순수함을 얻고 왔죠. 자연을 완전히 사랑하게 됐고, 자연이 사람을 더 다정하게 만든다는 신념도 다시 한 번 확인했어요. 그리고 그 경험은 하반기 내내 제 단골 이야깃거리가 됐죠. 만나는 사람마다 자연 속의 공기와 인정을 이야기했는데, 그 친구들이 슬슬 지겨워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네요. 지금은 대도시에 있지만, 이곳의 공기, 이곳의 색깔, 그리고 모두가 무표정한 얼굴이 정말 싫어요.
인생에 대한 인식이든, 삶의 이상이든, 일에 대한 태도든. 2013년에는 제가 조금 더 섬세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밤이 깊었네요,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