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사람

누군가에게 나 자신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려주려고 할 때, 그제야 나에게는 이야기가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예를 들어 어젯밤 밥을 먹을 때, 동료에게 황런위의 《만력 15년》에 나오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정통 역사와 교과서 역사는 다르다는 걸 증명하려고 했는데, 머릿속을 세 번이나 훑어봐도 확실한 근거를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어요. 결국 “달라요, 달라요, 정말 달라요”만 반복하고 있었죠. 그때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읽은 책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지금의 판단은 그저 그때 반짝 스친 깨달음이었던 건가, 결론만 기억하고 과정은 기억하지 못한 건가 싶었죠.

원래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 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갈망이 치솟는 순간은 손에 꼽을 정도예요. 하나는 고수를 만났을 때, 또 하나는 어쩔 수 없이 두 마디 해야 할 때죠. 첫 번째 경우는 나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 고담준론을 펼칠 때 나도 끼어들어 우리가 같은 편인지, 아니면 적인지를 증명하고 싶을 때예요. 두 번째는 공적인 자리에서 모두가 이야기와 경험을 나누고 있을 때, 그 흐름에 편승하려고 억지로 진흙을 묻히는 경우고요. 어느 쪽이든 교류보다 내성으로 인생 경험을 쌓아온 나 같은 사람에겐 괴로운 일이에요. 내성적인 사람은 책, 영화, 음악 같은 온갖 문화 자원에서 지식과 신념과 에너지를 얻어 자신의 행동 기준을 만들어요. 외향적인 사람처럼 술 한잔, 수다 한판으로 투지와 자신감이 충만해지는 것과는 다르죠. 그래서 내성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은 대화 방식에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요. 내 행동 기준과 신념은 기본적으로 독서, 영화, 인터넷에서 나오는데, 정보가 넘쳐나다 보니 보자마자 잊어버리는 습관이 이미 몸에 배었어요. 그래서 내 지식 체계에는 명확한 이야기 데이터베이스가 없고, 어렴풋한 개념만 잔뜩 기억하고 있죠. 이런 이유들 때문에 나는 이야기를 들려줄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내 이야기도, 내 감정도 꺼내지 않아요. 결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잘난 척하는 게 아니랍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니, 이제는 어떻게 하면 내 이야기 보관소를 풍성하게 만들지가 과제예요. 방법은 두 가지를 벗어나지 않아요. 생활 속의 재미있는 일을 기억해 두었다가 결론을 하나 도출해서 친구에게 나누는 것, 그리고 친구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억해 두었다가 다른 사람에게 나누는 것이죠. 심지어 보험 파는 사람들처럼 남의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인 양 능수능란하게 떠들 수도 있어요. 단, 절대 반복하지는 말아야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