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화났을 때 결정을 내리지 마세요
연말은 주류 판매 성수기라 어느 포장재 공급업체든 생산 일정이 빡빡하기 그지없어요. 어제 한 공급업체가 우리한테 납품해야 할 병 라벨 한 배치를 하루 미뤘는데, 사장님이 전화로 저를 한바탕 갈구더니, 대리점에서 이 물량을 안 받으면 제가 연대 책임을 지고 회사에 배상해야 한다고 경고했어요. 그분이 이런 말 하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에요. 14년 말에도 대리점 주문 제작 제품의 400 번호를 제멋대로 회사 번호로 바꿔놓은 적이 있었거든요. 대리점에서 문구 검수할 때 그 변경을 못 알아채고 인쇄를 승인했는데, 납품 후에 대리점이 펄쩍 뛰었죠. 사장님이 저한테 전화해서 배상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다행히 못된 인간이 발뺌할까 봐 1년 내내 통화 녹음을 켜뒀고, Dropbox에 정기적으로 백업도 해뒀어요. 터무니없는 비난을 듣고 나서, 일단 그렇게 무턱대고 저를 몰아세우지 말고 제가 기록을 좀 찾아보겠다고 했죠. 한 시간 뒤에 사장님과 대리점 양쪽에 대리점이 생산을 확인하던 때의 통화 녹음과 메시지 기록을 보내버렸더니, 완전히 입을 다물더라고요. 이 일 이후로 저는 우리 사장님 인품에 대해 확실히 알게 됐어요. 급하면 이성이 마비돼서 앞뒤 안 가리고 자기 책임은 깔끔하게 빼고 모든 책임을 남한테 떠넘기는,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걸요.
그래도 저는 사표를 안 냈어요. 우선 그분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지역을 벗어난다고 천국인 것도 아니고, 사람이 어디를 가든 다 객지인 걸요.
그래서 어제 똑같은 어조의 전화를 받았을 때, 속에서 만 마리 초니마가 질주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래도 아무 말 안 하고, 어쩌면 너무 화가 나서 정신이 혼미했는지, 사장님이 기세등등하게 다 떠들고 나서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그러고 나서도 지난번처럼 고객 주문 제작 제품의 생산 계약서를 뒤져봤는데, 계약서에 “선금 지급 후 35일 이내 출고, 그렇지 않으면 매일 을이 갑에게 총대금의 3%를 배상한다”라고 명시돼 있더라고요. 하루 미룬 걸 더해도 23일 안에 출고할 수 있으니 아무런 위약도 아니에요. 열 받으면 연휴 끝나고 출고해도 위약 아니지 않냐고!
사무실에서 동료들 앞에서 사장님이 계약대로 일 처리 안 한다고, 고객한테 출고일을 거짓으로 알린다고 뒤에서 욕했는데도 속이 안 풀리더라고요. 뒤에서 욕하는 건 도리도 아니고, 전화로 직접 따져야겠다 싶어서 휴대폰 꺼내서 번호 찾아 눌렀어요. 오늘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따져 물어야겠다, 대체 왜 배상이냐고! 못 해먹겠으면 그만두면 되지!
그때 웨이 선생님이 제 뒤에 서서 느릿느릿 말했어요. “뭘 또 걸어, 다들 화나 있는데……”
갑자기 신선이 길을 가리켜 주는 듯, 막힌 곳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어요. 얼른 전화를 끊었죠. 그분은 원래 그렇게 뿌리 깊게 구렁텅이에 빠진 인품과 인생관을 가진 사람이고, 저는 십여 일 뒤에 나올 연말 상여금이 필요하니까요……
그러니까 절대 화났을 때 결정을 내리지 마세요. 아니면, 51job에 들어가 보시거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