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생각들

찬비가 내리고 청두(Chengdu) 기온이 꽤 떨어졌어요. 거기다 백주랑 맥주를 마구 섞어 마신 탓에 감기에 걸렸지 뭐예요. TV로 《트루먼 쇼》를 보면서 코를 훌쩍이는 중에 엄마가 털 슬리퍼 한 켤레를 발앞에 툭 던져놓고 신으라고 하더라고요. 겨울이 왔어요! 엄마가 옷장을 뒤적이며 털 슬리퍼를 찾을 때마다, 일기예보를 안 봐도 기상학에서 정의하는 겨울이 왔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털 슬리퍼를 신고 나니 겨울이 더 추운 것 같더라고요. 어깨로 한기가 스쳐서 방에 가서 양말을 신었더니 봄처럼 따뜻해졌어요.

그래야 마음 놓고 이 글을 쓸 수 있죠. 안 그러면 시월이 휙 지나가버리니까요.

동문이 블로그를 한참 안 올렸다고, 그리고 학교 다닐 때처럼 패기 넘치지도 않다고 묻더라고요. 저는 바보가 됐다고 했어요. 그냥 그렇다고요. 첫째는 책 읽기가 점점 게을러져서, 새 책을 사오면 한 장도 안 펼쳐본 채 높이 모셔두고, 먼지가 수북이 쌓이면 수납박스에 넣고 좀약까지 넣어 보관하는데, 꼭 박물관 소장품이 되기 전 의식 같아요. 둘째는 SNS를 덜 쓰다 보니 시야가 좁아지고 지식 정리가 거의 안 되고요. 셋째는 요령 피우기, 귀찮아서 손대기 싫어서 블로그 프로그램조차 개발자 업데이트를 안 따라갔으니, 이건 강박증이 나은 임상적 증거예요. 넷째는 뭘 배우는 게 좀 힘에 부치고 학습 흥미가 좋았다 나빴다 들쭉날쭉 끊기기 일쑤고요. 이 모든 걸 종합하면 제가 그냥 바보 같아요. 그것도 모자라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상태를 바꾸기 귀찮다는 거예요. 늘 앞으로 날이 많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리고 말해야겠는데, 주택담보대출이 계속 이어지고 끝이 안 보이다 보니 확실히 삶의 질이 떨어졌어요. 억누를 수 없는 물질적 욕망에 대출이랑 생활비 지출까지 더해지니 돈을 좀 더 벌 방법을 궁리하지 않을 수 없고요. 한 달에 5~6천 위안 밑으로 떨어지면 꽤 불안해요.

게다가 제 자신에서 오는 압박뿐 아니라 부모님도 어느 정도 기대를 걸고 계세요. 엄마가 저축이 얼마냐고 물으시는데 늘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아빠는 제가 몇만 위안을 보태면 당신이 몇만 위안을 더 보태서 K3나 피아트 비아지오를 사주겠다고 하셨어요. 차는 남자의 애인이라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관리할 정력도 없고 그것도 문제라서 두 번이나 거절했어요.

저는 늘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남 앞에 서고 싶지 않아서, 누가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이렇게 답해요. 그럭저럭 지내요, 압박이 커요.

제 상태만 안 좋은 게 아니라 대환경도 안 좋아요. 이 2년간 침체된 주류 업계에 몸담고 있다 보니 전국 경제 상황을 좁은 구멍으로 엿보게 되는데, 요즘은 어느 업종이든 다 힘들다는 느낌이에요. 부동산도 마찬가지고요. 출근길에 새로 개발한 단지가 하나 있는데, 분양 초기에는 울타리에 “평당 7898부터”라는 글자가 거대하고 늠름하게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반년 만에 “7598”, “7398”로 계속 내려가더니 최근엔 벽에 걸린 숫자가 “7198”이더라고요. 어느 다정한 나쁜 놈이 벽 한쪽을 찢어놨는지, 아래에 있던 “7398” 잉크가 아직도 번쩍번쩍 눈에 띄어서 꼭 속옷이 드러난 것 같았어요.

예전엔 도시 하나하나가 다 구매 제한이었는데, 이제 구매 제한하는 도시는 몇 개 안 남았어요. 정부가 시장 살리려는 의도는 뻔한데 소비자들은 여전히 안 사주네요. 뉴스를 좀 찾아보면 은행 예금이 전년 대비 줄었다고 하는데, 인민폐가 어디로 갔는지 참 궁금해요.

전설에 따르면 부동산이 좋으면 주가지수가 떨어지고, 집값이 떨어지면 주가지수가 오른다더라고요. 그래서 2년 넘게 멈춰 있던 주식 계좌에 돈을 좀 넣고 러스(Leshi)를 샀어요. 미래 가정용 엔터테인먼트의 선두주자가 될 잠재력이 아주 좋아 보였거든요. 그런데 한 달 만에 국가광전총국이 인터넷 TV 발전을 제한하는 비준 문서를 두 번이나 내려서 모든 환상이 물거품이 됐어요. 중국 주식, 하!

다들 저마다 출구를 찾고 있어요. 어떤 동료가 자꾸 제 사무실에 들어와서 약재를 찧는 건 어떨지, 직접 술을 빚는 건 어떨지 묻는데, 저는 다 좋다고, 전도가 밝고 수익 모델도 명확하다고, 우리 같이 해보자고 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첫발도 안 뗐어요. 십일월이 또 다가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