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매장》을 읽고

어제 무거운 마음으로 《위안매장》을 다 읽었어요. 읽고 나면 그만두고 다시는 꺼내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오늘 장팡저우의 《도쿄 1년》을 집어 들고 어제처럼 “작은 방에 숨어 세상 돌아가는 일 다 잊고, 봄가을이 오가는들 무슨 상관이랴” 하고 싶었지만, 뜻밖에도 후다이윈의 그 말이 “나는 위안매장 당하지 않아, 나는 위안매장 당하지 않아!” 자꾸 귓가에 맴돌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몇 자 적어 보기로 했어요. 세상사에 대한 제 태도를 밝히는 셈이죠.

위안매장(연매)이란 사람이 죽었을 때 관 없이 그냥 흙에 묻는 것을 말해요. 촨둥(천동, 충칭 펑제와 후베이 리촨 일대) 사람들은 위안매장을 하면 내생이 없다고 믿었죠.

소설의 배경은 1950년대 토지개혁 운동이에요. 촨둥 일대의 가난한 사람들이 정책에 호응해 지주를 때려잡고 땅을 나눴는데, 당시 주변 지주들은 하나같이 화를 입었어요. 죽거나, 아니면 죽는 것보다 못한 꼴이 됐죠. 당시 후(호)씨와 루(육)씨 두 대지주 집안은 사돈 관계였는데, 이 투쟁에 함께 휘말렸어요. 후씨 집안은 다이윈이 부모와 절연하도록 강요당해 연루되지 않은 것 말고는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살해됐고, 집은 빼앗기고 재산은 흩어졌으며, 집안의 장서는 사흘 밤낮을 태운 뒤 농민들이 지게에 지고 가서 거름으로 썼대요. 루씨 집안 자녀들은 상황을 보고 도망칠 준비를 했지만, 루씨 집안이 해방에 공을 세운 덕에 현 정부와 마을 사람들로부터 투쟁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았기에 도망을 포기했어요. 그런데 뜻밖에도 원수 진 김점이라는 자가 외지에서 돌아와 정책을 이용하고 마을 사람들의 이익을 좇는 탐욕을 부추겨 군중을 조직해 루씨 집안을 포위하고 다음 날 아침 투쟁대회를 열려고 했죠. 루씨 집안은 하루 전에 밀정보를 받고 피할 수 없음을 알았어요. 결말은 대부분 후씨 집안과 같을 테니,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전답과 집을 나눌 뿐 아니라 딸과 하녀까지 마을 사람들에게 강제로 시집보내려 할 것이 뻔했죠.

결말을 아는 이상 선택은 간단해졌어요.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니까요. 루씨 집안 사람들은 마지막 성찬을 먹고 정원에 가서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비상(비상)을 마신 뒤 구덩이에 누웠어요. 그리고 며느리 다이윈이 그들을 묻었죠. 다이윈은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 열 명의 식구를 위안매장한 뒤 아들을 안고 비밀 통로로 도망쳐, 미리 준비해 둔 두세 명만 탈 수 있는 작은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갔어요. 얼마 안 가 배를 젓던 하인 푸구이가 다이윈의 입에서 자기가 좋아하던 하녀 샤오차가 이미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말을 듣고는 곧바로 배에서 뛰어내려 샤오차를 찾으러 갔어요. 다이윈은 배를 젓지 못해 배가 급류에 뒤집혔고, 아들은 실종되고 다이윈은 하류 사람들에게 구조된 뒤 기억을 잃었어요……

기억을 잃은 채로 수십 년이 흘렀어요. 다이윈은 이름을 딩쯔타오로 바꾸고, 결국 자신을 구해준 의사 우자밍과 결혼해 아들 우칭린을 낳았죠. 딩쯔타오는 지난 일을 떠올리려 하지 않았어요. 억지로 기억 속을 더듬으면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이 그녀를 이유 없이 긴장시키고 공포에 떨게 했거든요. 우자밍은 딩쯔타오의 희고 고운 피부, 정교한 손톱, 그리고 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그녀가 분명 대갓집 딸이며, 그런 처지가 되기 전에 반드시 엄청난 고통을 겪었으리라 짐작했어요. 우자밍도 절망에서 걸어 나온 사람이었어요. 본래 성이 동씨였고 부모가 대지주여서 토지개혁 때 살해됐는데,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산속의 오씨 사냥꾼에게 구조된 뒤 산속에 숨어 살며 성을 오씨로 바꿨죠. 깨끗한 배경 덕분에 우자밍은 거듭된 정치 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딩쯔타오의 신분은 절대 시한폭탄이었기에, 당시 사회 환경에서는 깊이 파고들지 않고 탐구하지 않는 것이 딩쯔타오를 지키는 최선이었죠. 그는 영원히 비밀을 지키기로 마음먹었어요.

훗날 아들 칭린은 아버지의 노트를 뒤적이다 부모의 내력에 대한 단서를 찾았고, 대학 동창 룽중융이 그와 함께 현장을 답사했어요. 어머니의 내력에 대한 진실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진실의 잔혹함을 예감한 그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삶은 평온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뚜껑을 열어 보면 정말 흉측하고 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다.” 과거를 잊어야 인생길을 가볍게 걸을 수 있다고요. 아버지가 애써 망각하려 했고 어머니가 회상을 거부했으니, 칭린은 자신도 굳이 캐물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말했어요. “세상에는 기억할 가치가 없는 일이 분명 있지. 아니, 세상에는 잊어야만 하는 일과 사람이 있어.”

룽중융은 한참 말이 없었어요. 차가 충칭을 벗어날 즈음에야 그가 말했죠. “그야 그렇지. 다만 어떤 사람, 어떤 일은, 이 세상에 기꺼이 잊으려는 사람이 있더라도 반드시 기억하려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야.”

전체 글의 중심 사상은 아마 위의 두 문장일 거예요. 어떤 일의 진실은 정말 잔혹하기 그지없어서, 방관자는 끝까지 캐물어 세세한 가지와 뿌리, 앞뒤 인과를 파헤치고 싶어 하죠. 하지만 직접 겪은 사람에게는 어떨까요? 지난 일을 돌아보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큰 신산과 무력감이며, 얼마나 말하기 괴롭고 부끄러운 일인지요?

1월 28일은 홀로코스트 추모일이에요. TV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었던 노인들이 수용소로 돌아가 희생된 동포를 추모하는 모습을 봤는데, 한 노인이 이곳을 다시 마주하기가 너무 힘들지만 오늘날 사람들이 역사의 진실과 잔혹함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기꺼이 다녀가겠다고 하더군요.

만약 제가 방관자로서 직접 겪은 사람을 심문해야 한다면, 저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만약 제가 역사를 직접 겪은 사람이라면, 그 심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없어요. 시간이 어쩌면 좋은 약이 될지도 모르죠. 마치 양셴후이가 자볜거우의 체험자들을 인터뷰했을 때처럼, 사오십 년 뒤에 다시 겪은 사람들에게 복술을 청하니 적잖은 노인들이 익살스럽고 유쾌하게, 아주 가볍게 말하더군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시의 처지는 결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어요.

작가 팡팡은 이 책을 창작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당신에게는 진실이 필요 없겠지만, 역사에는 필요하다.” 그런데 약간 아이러니하게도 역사는 이 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듯했어요. 승자는 그녀가 역사의 어두운 면을 그려내기를 바라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위안매장》이라는 책은 그대로 위안매장 당하고 말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