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는 얻고 수박은 놓쳤네
어느 월요일 저녁, 설거지를 하면서 별생각을 다 하던 중이었어요. 그런데 문득 어제 저녁 어떤 고객이 보낸 영문 모를 문자 한 통이 떠올랐죠. “참깨는 얻고 수박은 놓쳤네.” 별생각 없이 답장을 보냈어요. “라오황, 문자 무슨 뜻이에요?” 답장은 깜깜무소식이었고, 저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늘에야 갑자기 깨달았죠. 아, 라오황이 내게 ’참깨를 줍고 수박을 놓쳤다’는 소리를 한 거구나.
그러자 화가 확 치밀었어요. 냄비랑 그릇을 다 씻고 책상 앞에 앉아, 어제 문자를 다시 열어 내가 잘못 본 건 아닌지 확인했어요. 틀림없었죠. 라오황의 말은 앞으로 나한테 디자인을 맡기지 않겠다는 뜻이었어요. 라오황의 말투로 봐서, 나는 이제 귀인 한 명을 잃은 셈이에요. 하지만 고객을 잃은 게 아쉽지는 않아요. 그를 알게 된 것도 우연이었고, 지금까지 별로 얻은 것도 없으니까요. 지금 상황으로 보면 미래는 아직 슈뢰딩거의 고양이 상태에 있고, 라오황이 떠난다는 건 그를 알기 전에 갈라졌던 또 다른 평행우주로 돌아가는 것뿐이니, 삶은 여전할 거예요.
그럼 나는 왜 화가 났을까요? 사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화가 난 거예요. 라오황과 늘 카드 치고 술 마시면서, 내 돈을 반년째 안 갚고 있는 라오두한테 말이죠. 라오두가 라오황한테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아마 내가 매일 전화해서 빚 갚으라고 닦달하는 얘기를 했겠죠.
사실 다 별일 아니에요. 라오두가 내 디자인비 2000위안을 빚졌는데, 계속 준다고만 하고 반년 넘게 못 줬어요. 마침 요즘 내가 돈이 없어서 매일 전화 한 통씩 독촉했죠. 일주일 넘게 재촉하다가 빡쳐서 이렇게 말해버렸어요. “2000위안 별것도 아닌데, 재무팀에 말해서 처리하면 되잖아요. 몇 분이면 되는 일인데, 나라고 2000위안 때문에 일부러 사무실까지 찾아가서 받겠어요? 그러면 서로 체면만 구기죠!” 그래서 사이가 틀어졌어요. 물론 저는 원래 좀 틀어질 계획이었기도 해요. 이번 생에 만날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한 명쯤 줄어도 괜찮죠.
나중에 라오황한테 참깨 한 무더기랑 수박 하나를 비교한 사진을 보내서, 참깨 한 무더기가 많은 건지 수박 하나가 큰 건지 보게 해줄까 싶었어요. 그러다 다시 생각해보니, 어차피 앞으로 협업 안 할 건데, 말 더 해봤자 다 헛소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