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윈난 여행기: 샹그릴라 — 더친

D1: 샹그릴라

연휴 시작 한 시간 전에 사장님이 국경절 6일에는 출근하라고 하시는 통에 내 마음은 순식간에 두 배로 무거워졌어요. 설마 계획해둔 8일 일정이 물거품이 되는 건가 싶어서요? 그건 정말 싫어요! 월급은 어떻게 깎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세요, 어차피 그깟 돈이니까요. 조금 더 받는다고 부자가 될 것도 아니고, 조금 덜 받는다고 거지가 될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인생 경험이라는 건 돈을 얼마를 주든 다시 살 수 없는 거니까요.

출발 전날이 추석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창밖은 폭우였어요. 변수가 너무 많아서 회사에서 준 월송 한 개를 먹고 나서야 버스터미널에 가서 10월 1일 샹그릴라행 표를 샀어요. 원래는 차 상태가 더 좋은 일반석 버스로 먼저 리장(Lijiang)에 가서 갈아타고 샹그릴라로 갈 생각이었는데, 리장행 버스가 평소보다 이삼십 위안은 비싸고 샹그릴라 직행 침대버스는 몇 위안밖에 차이가 안 나서, 경제성과 시간을 따져보니 그냥 샹그릴라로 직행하는 게 낫겠더라고요. 여행이 다 그렇죠 뭐,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거예요.

샹그릴라는 12년 전까지만 해도 중뎬이라고 불렸는데, 관광 경제를 키우려고 지금의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름으로 바꾼 거예요. 그런데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중뎬현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샹그릴라행 침대버스는 하루에 한 대뿐이고, 전 구간 12시간이 걸려요. 침대버스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지저분하고 은은한 악취를 풍기는 이불만 빼면 누워 있을 땐 꽤 편했어요. 경계를 벗어나고 몇 시간 지나자 버스는 산골짜기에서 거북이걸음으로 기어가고 있었는데, 오른쪽은 물살이 거센 강이고 왼쪽은 기암괴석의 절벽이었어요. 기사님이 분명히 길에 아주 익숙하시겠지만, 물가를 늘 다니다 보면 신발이 젖는 법이잖아요. 내가 차 방향을 조종할 순 없어도 적어도 내 죽음은 볼 수 있겠다 싶어서 한 번도 눈을 감을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길 위의 풍경도 여행의 일부인데, 나중엔 누워서 대충 훑어보는 자세가 도저히 못 견뎌서 일어나서 주변 풍경을 좀 보려고 했더니, 몸을 세우고 나서야 침대버스가 얼마나 반인간적인 교통수단인지 깨달았어요. 머리는 거의 천장에 닿고 창문은 눈높이보다 낮아서 누워서 보는 것보다 더 불편하더라고요. 결국 옆으로 누워서 풍경을 봐야 했는데, 그 자세가 참 이상했어요. 산수화 속에서 깃털 부채 들고 건곤일척 누워 산을 감상하던 옛사람 말고는 누가 누워서 조국 강산을 감상했겠냐 싶었죠.

버스는 화핑, 융성 두 현을 지나 리장에 도착하는데, 동부 지역의 도로 사정이라면 별것 아니겠지만 아쉽게도 여기는 서부 산간지역이라 거기까지 오는 데만 여섯 시간이 걸렸어요. 이 구간에서 제법 험한 곳은 진안차오 수력발전소인데, 버스가 산골짜기를 따라 진안차오까지 갔다가 다시 구불구불한 산길을 사오십 분이나 돌았는데도 여전히 하곡이 보이더라고요. 해발만 높아질 뿐 리장까지의 직선거리는 전혀 줄지 않은 것 같았어요. 진안차오를 지나면 하곡 평원에 자리한 융성현에 도착하는데, 현을 막 벗어나니 중화와 황허러우 담배 재배기지가 보였어요. 이 평탄한 지역에서 몇 백 미터만 더 가면 시야가 확 트이는데, 마치 갑자기 공중에 떠 있는 듯했어요. 눈 아래로 거대한 퇴적 평원이 펼쳐지고, 햇빛이 먼 구름 사이로 새어 나와 황금빛 벌판에 곧장 빛줄기를 꽂아 내리고, 여기저기 마을이 점점이 박혀 있었어요. 낙차만 크지 않았더라면,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만 들렸더라면, 이 벌판은 꼭 도연명의 무릉도원 같았을 거예요.

버스가 리장을 지날 땐 이미 저녁이었어요. 도시의 불빛이 총총하고 길가엔 온갖 외지 차량이 가득했는데, 전혀 흥미가 안 갔어요. 그냥 지나가는 곳이어서 다행이었죠. 더 앞으로 가니 어둠이 내려앉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침대에 누워 창밖의 선명한 별빛과 동쪽 산 위로 막 고개를 내민 밝은 달을 보다 보니, 기억이 어릴 적으로 나를 데려가더라고요. 그때는 깜깜한 뒷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어둠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팔꿈치로 머리를 괴고 하늘의 달과 별을 올려다봤는데, 오늘 밤 리장의 하늘처럼 맑았어요. 그 후로 나는 거의 도시에서 살았고, 밤에 별하늘을 볼 수 없었고, 어릴 적 그 기묘한 느낌들을 완전히 잊었고, 내가 나 자신이라는 것마저 거의 잊을 뻔했어요.

샹그릴라에 도착했을 땐 이미 밤 열두 시였어요. 기온이 약간 쌀쌀하고 머리가 은근히 아팠는데, 처음 고원에 올라서인지, 아니면 고산병이 아니라 천 리를 달려온 피로가 부른 히스테리인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샹그릴라에 발을 들인 첫날 밤은 터미널 맞은편 여관을 찾아 그냥 잤어요.

D2: 샹그릴라 쑹찬린 사원 — 더친 페이라이 사원

샹그릴라에서 처음 잔 밤, 뇌는 밤새 얕은 수면 상태에 머물렀어요. 계속 땅에 붙어 날아다니는 기분이었고, 어딘지 모를 많은 곳을 어렴풋이 지나갔어요. 디칭 고원에서의 멋진 여행을 꿈꾸며 7시 조금 넘어서 깼는데, 얼른 커튼을 젖혀 밖을 봤어요. 첫눈에 실망했어요. 우선 하늘은 예상대로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구름층이 원래 높지 않아서 꽤 답답한 느낌이었어요. 게다가 창문 아래 길 양옆은 먼지투성이에 어수선한 가게들과 썰렁한 아침까지 더해져 도시가 아주 낡아 보였어요. 그래도 일이 분 만에 낙관적으로 변했어요. 내가 묵은 여관이 현 경계라서 그렇지, 중국 도시의 도농 접경지대가 어디 안 그렇겠냐 싶었거든요. 어젯밤 여관 주인에게 물어봤는데 광안 출신이라니 대충 따지면 우리도 동향인 셈이었어요. 주인이 샹그릴라에서는 쑹찬린 사원과 푸다춰에 갈 수 있다고 알려줬어요. 내 일정에 원래 샹그릴라가 없었지만, 왔으니 한두 군데라도 안 둘러보면 12시간의 고생이 아깝잖아요. 그래서 가까운 쑹찬린 사원에 갔어요.

윈난 관광 입장료는 원래 바가지가 심한데, 국경절에 관광객이 물밀듯 몰려오는데 할인도 안 하면 민원이 빗발칠 게 뻔하니, 그들도 잘 알았는지 추석 전날에 윈난 관광지 입장료를 긴급히 25% 인하했어요. 쑹찬린 사원 입장료는 할인 후 91위안이었어요. 샹그릴라 여행 공략을 전혀 준비하지 않아서 쑹찬린 사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입장료가 이렇게 비싸니 분명 웅장한 건축에 가호도 대단하겠거니 짐작했어요. 손에 든 표를 보니 아주 익숙하고 웅장한 금빛 지붕 사원이 있었는데, 예전에 인터넷에서 몇 번이고 들여다봤던 그 사원이 바로 쑹찬린 사원이었어요. 그런데 무심코 이렇게 오게 되다니, 이것도 인연이겠죠.

쑹찬린 사원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지만 멀리서 보는 위세는 대단히 웅장했어요. 가까이 가보니 작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고, 언덕 주변엔 작은 승려 숙소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어요. 이 숙소들이 별이 달을 받들 듯 감싸주는 덕에, 금빛 지붕의 대전 세 채뿐인 쑹찬린 사원이 더욱 화려하게 빛나 감동적이었어요.

신앙에 대한 존중으로 사원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사원 해설 가이드를 따라 안을 거닐었어요. 안타깝게도 신성한 석가모니 불전 위에서도 세상의 그 많은 소란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어요. 불전 위에는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장명등이 있었는데, 향객이 승려에게 10위안을 줘야 한 등불을 밝힐 수 있었어요. 나는 나한상 아래에 한 등불을 청해 밝혔어요. 불교 주변에서 자라왔지만 나는 신자는 아니에요. 그래도 역시 중국인 특유의 부처 보면 절하고 귀신 보면 상 차리는 병은 있나 봐요. 더 깊이 말하자면, 나는 할머니를 대신해 한 등불을 밝힌 거예요. 할머니는 한 번도 쓰촨을 벗어난 적이 없으시거든요. 신성한 샹그릴라에서 할머니를 대신해 가족을 위해 버터등 한 등불을 밝혔다고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쑹찬린 사원에서 나와 곧장 어젯밤 묵은 여관으로 가서 주인에게 맡긴 배낭을 찾은 뒤, 더친행 미니버스에 올랐어요. 미니버스엔 승객이 일곱 명이었는데, 나를 포함해 페이라이 사원까지 가는 관광객은 셋뿐이었고, 한 명은 번쯔란 쓰촨 경계 쪽으로 송이버섯 냉동창고를 지으러 가는 충칭 청년, 나머지는 모두 더친현으로 가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번 윈난 여행에서 나는 나를 태워준 모든 기사님들께 감사해요. 그분들은 좁은 산길에서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다른 손으로 전화를 받으면서도 차를 골짜기로 처박지 않았거든요. 우리를 페이라이 사원까지 태워준 기사는 스무 살 남짓한 티베트 청년이었는데, 내가 그의 차를 탄 건 차 상태가 아주 좋아서였어요. 가다가 검문소를 만났는데, 교통경찰이 서류를 내라고 하자 그는 차 구입 증명서와 운전면허만 내놓을 수 있었고 다른 보험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알고 보니 새 차였던 거예요. 폭풍 땀… 그래도 그는 역시 전화를 받으면서도 운전해서 우리를 안전하게 페이라이 사원까지 데려다줬어요.

페이라이 사원에 도착해서 첫눈에 메이리 설산은 보이지 않았어요.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여전히 실망스러웠어요. 거센 바람이 불어와 산꼭대기를 덮은 구름과 안개를 싹 쓸어가길 기도하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한참 만에야 현실을 받아들였어요. 그다음 페이라이 사원 경관지구에서 214 국도를 따라 마구 걸으면서, 지명이 아닌 그 페이라이 사원을 찾으려 했어요. 한두 킬로미터를 걸어도 아무 기척이 없어서 그냥 돌아왔는데, 어떤 아가씨가 페이라이 사원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어요. 나는 나도 페이라이 사원을 찾는 중이라며 같이 찾자고 했어요. 어차피 설산도 안 보이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온갖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여기저기 걸었는데, 나도 모르게 내가 도시에서처럼 침울하고 할 말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발견했어요. 자유 때문이겠죠. 여행 중에는 내가 한 말에 책임질 필요도 없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숨길 필요도 없고, 나쁜 마음으로 남의 돈을 노릴 필요도 없어요. 나는 그저 여행자로서 일부러 풍경을 보러 왔을 뿐,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다 정말 페이라이 사원을 찾았어요. 작은 사원으로, 현지인들의 보살 사당이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같이 밥을 먹었어요. 야크 고기 볶음 한 접시, 청양고추 감자채 볶음 한 접시를 시켰죠. 비용은 더치페이하고 헤어졌는데, 그때 나는 이번 생에 다시는 못 만나겠구나 싶었어요. 다음 날 그녀는 샹그릴라로 돌아가고, 나는 위벙으로 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