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위 속엔 아직 그 가난한 아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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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재력으로 가릴 수 없는 식습관의 밑바탕

예전엔 재정적 자유에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먹는 것에도 꽤 까다로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매 끼니 전복에 랍스터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고탄수화물과 기름지고 짠 음식 같은 투박한 식사와는 작별했을 줄 알았죠.

그런데 나중에 보니, 상당한 자산가인데도 여전히 자극적인 기름과 탄수화물에 미친 듯이 빠져 있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아마도 가난한 집에서 자라며 생긴 후유증일 거예요. 결핍의 시대에는 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얻은 셈이었으니까요.

02. 죽으로 지배당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저는 어릴 때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자랐는데, 하루 세 끼가 기본적으로 죽, 국수, 밥이었어요.

매일 아침은 죽뿐이었고, 특히 고구마죽이었죠. 그게 제게 남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는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맹탕에 동부콩 절임을 곁들여 먹으니 속이 울렁거려서 못 먹겠더라고요! 저는 매 끼니가 흰쌀밥이었으면 했어요.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밥을 먹을 때면 고기도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여름날 점심에 고추 볶음 고기를 먹던 날이 기억나요. 따가운 햇볕을 뚫고 텃밭으로 달려가 삐뚤빼뚤한 풋고추를 한 보따리 따 왔죠. 어릴 땐 매운 걸 싫어했는데, 그때 고추는 지금보다 백 배는 맵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그런 건 신경 쓸 겨를이 없었죠. 고추 더미에서 기름이 번들번들 흐르는, 가장 두툼한 고기 조각을 찾아 입에 넣고는 정신없이 밥을 퍼 넣었어요. 핏대가 서고 콧물이 흐르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질 때까지요.

그건 궁핍한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그야말로 날아갈 듯이 짜릿했죠!

03. 탄수화물 천국에서의 ‘보상 심리’

안타깝게도 그런 행복이 넘치던 순간은 일상이 아니었어요. 매일 흰쌀밥을 먹는 건 사치스러운 상상이었죠. 그래도 죽만 안 먹으면 하루에 국수 두 끼라도 괜찮았어요. 국수에 채소 잎 몇 장 넣고 소금, 간장, 고추기름, 쪽파로 양념하면, 그 자극적인 맛만으로도 밍밍한 삶을 충분히 덮을 수 있었거든요. 물론 더 맛있는 면 요리도 있었죠. 할머니가 가끔 수제비나 만두, 찐빵, 베이컨 완자를 만들어 주시기도 했는데, 그건 좀 드물었어요. 냉장고도 없고 아무 때나 시장에 나가 살 수도 없으니, 먹고 싶으면 그때그때 만들어야 했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번거로웠으니까요.

이런 식습관은 마치 각인처럼 제 유전자에 새겨졌어요. 나중에 생활 형편이 나아진 뒤에도 저는 고기와 면 요리에 거의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보였죠.

‘탄수화물의 수도’ 시안(Xi’an)에 갔을 때,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다양한 면 요리들을 보고 있었어요. 유포면, 사오쯔면, 러우자모…… 마치 도파민의 소용돌이에 빠진 기분이었죠.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뙤약볕 아래를 달려 기름진 고기 한 점을 위해 뛰어다니던 소년이었어요. 탄수화물과 지방이 섞여 만들어내는 원초적 쾌감은 ’결핍’이라는 이름의 스위치를 대뇌피질 속에서 정확히 눌렀죠.

04. 각성: 몸이 보내는 청구서와 인식의 자기 혁명

하지만 어른이 된 몸은 정직하더라고요.

건강검진 결과지의 화살표들이 불안하게 튀기 시작했을 때, 저는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나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과거의 굶주림에 노예가 되어 있었던 거예요. 고당, 고지방, 고탄수화물을 향한 선호는 본질적으로 농업 문명이 육체노동자에게 남긴 ’생존 에너지 팩’이에요. 그런데 무한 공급이 가능한 지금, 그것들은 건강의 보이지 않는 살인자가 되었죠.

분명 찌거나 삶거나 맑게 끓이는 요리법도 있는데, 왜 늘 맵고 자극적인 볶음을 고를까요? 밥 한 그릇을 다 먹었는데 왜 또 한 그릇을 더 말까요? 배가 부른데 왜 젓가락을 놓기가 아쉬울까요? 우리는 단지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어른들에게서 물려받은 ’습관’을 먹고, ’안전감’을 먹고 있는 거예요. 배가 터질 듯이, 얼굴에 기름이 번들거릴 때까지 먹지 않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왠지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나약함이 느껴지는 거죠.

05. 계승: 그 척박함의 사슬을 끊어내기

식습관은 한 가정이 지닌 가장 깊은 보이지 않는 유산이에요. 많은 경우 우리는 음식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유전자 속 관성에 복종하고 있는 거죠. 얼굴에 기름이 번들거려야 ’잘 살고 있다’고 여기는 그 집착은 어른들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은밀한 유산이자, 가장 날카로운 족쇄예요. 우리 세대는 ’배부르지 못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다음 세대의 과제는 ‘유혹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절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저는 이 습관이 얼마나 완강한지 잘 알아요. 그래서 아이가 밥은 조금 덜 먹고, 양질의 단백질과 채소를 더 먹었으면 해요. 저는 아이에게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담백한 철학을 심어주려고 해요. 단맛과 짠맛은 줄이고, 성분표를 읽는 법을 가르쳐서 맛 뒤에 숨은 첨가물의 미로를 알아채게 하려고요. 제가 식탁에서 칼을 뽑아 흐름을 끊지 않으면, 아마 제 아이도 고당·고지방의 안개 속에서 이른바 행복감을 찾아 헤매게 될 거예요. 인생에는 재산만 있는 게 아니라, 건강한 식생활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담백한 한 끼 한 끼부터 시작해서,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진 ’결핍’이라는 이름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낼 거예요.